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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과 한수원이 한시름 놓은 배경에는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이 있었다. 올해 1월 9일 산업부는 지난해 11월 잠정 합의했던 미국 에너지부·국무부와 한·미 원자력 수출과 협력 원칙에 관한 기관 간 약정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이 약정이 뒷받침 됐기에 지식재산권 분쟁이 실질적인 후속조치의 첫 결과물이 된 셈이다.
정부와 한전·한수원의 노력 덕분에 올 3월에 있을 체코 원전 본계약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24조원 규모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수주를 두고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2022년 10월 지재권 소송을 제기하는 등 갈등을 빚어왔다. 그간 웨스팅하우스는 우리나라가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 APR1000·1400 모델이 자사의 원전기술에 기반한 것이라며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웨스팅하우스가 소송 취하 약속까지 한 만큼 이번 분쟁 종결로 양국이 유럽 등 세계 원전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세계 원전 시장 규모는 108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원전 동맹 결성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최근 미국 주도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지만, 당초 원전 강국이었던 러시아와 최근 자국 내 원전을 대거 건설하면서 신흥 강자로 떠오른 중국을 고려하면 세계 원전 시장에서 시너지 전략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실제 웨스팅하우스는 원천기술이 뛰어나지만, 지난 1979년 스리마일 원전 사고 이후 자국 내 원전 건설이 중단돼 원전 건설 능력 등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꾸준히 원전을 건설하면서 건설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각기 장점이 뚜렷한 한·미가 손을 잡으면서 러시아와 중국이 휩쓰는 세계 원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직전 극적인 화해가 이뤄진 것에 주목받는다. 만약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채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했다면 원점에서 논의했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이 원전 확대에 의지를 갖고 있는 만큼 향후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한전·한수원·웨스팅하우스는 구체적인 협상 조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업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웨스팅하우스에 특허 사용료를 지불하거나 중동·유럽 등 지역별 안배 조건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에 일부 시장을 양보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향후 확대될 원전 시장에서 미국과의 해묵은 갈등을 풀고 함께 신규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도 분쟁이 아닌 협력의 길로 나아가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서로의 강점을 살려 긴밀히 협력해 양국이 윈윈하는 전략을 구상해야 세계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이번 협력에 있어 우려도 크지만, 지나친 우려와 걱정보다는 격려와 응원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