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들 불안·스트레스 높아져
"영풍·MBK 신사업 물거품 뻔해"
집중투표제 공방…17일 법원 심문
16일 고려아연에 따르면 최고기술책임자(CTO)인 이제중 부회장을 포함한 핵심 기술진 15명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투기적 사모펀드 MBK와 심각한 환경오염 및 적자 등에 시달리며 실패한 기업 영풍이 고려아연 이사회를 장악할 경우 고려아연은 미래가 없다"고 밝했다.
그러면서 "50년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 발전해 온 고려아연은 하나의 원팀으로 함께 만들어온 노력의 결과물"이라며 "우리는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최윤범 회장을 포함한 현 경영진과 임직원이 함께 최선을 다할 것임을 약속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직접 기자회견에서도 "MBK가 회사를 인수한다면 전원 사표를 내겠다"고 강력 발언한 바 있다. 기술진은 이번에도 역시 "영풍-MBK 측과 함께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며 동일한 입장을 보여줬다.
핵심 기술진은 또 영풍-MBK 측이 신사업 성장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면서 고려아연의 미래 성장에 대한 비전이나 계획이 전혀 없다는 점을 절실히 느껴 왔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MBK와 영풍은 탄탄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해온 고려아연을 뺏고 싶다는 생각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이들의 적대적 M&A가 혹여라도 성공할 경우 고려아연이 그간 야심차게 추진해 온 신사업은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 뻔하며, 이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고려아연 노동조합 역시 성명서를 통해 "MBK· 영풍의 적대적 시도가 성공할 경우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저희 핵심기술진들이 함께 하지 않을 것을 결의했고, 고려아연 노동조합 또한 총파업을 포함해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를 저지하고 회사를 지킬 것"이라는 강경한 입장을 냈다.
고려아연 직원들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난해 9월 경영권 분쟁 촉발 이후 기술 유출 우려가 꾸준히 언급돼 오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고려아연 직원들과 울산 지역사회 등은 회사가 사모펀드로 인수될 시, 국가기간산업이기도 한 제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사모펀드 특성상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추후 회사를 매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 고려아연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번 경영권 분쟁 사태가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이 조사됐다. 고려아연이 지난해 12월17~23일 임직원 198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1010명 답변)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 76%(768명)가 이번 적대적 M&A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높아졌다고 답했다. 또 경영진 교체 시 가장 우려되는 점으로 18.6%(938명, 복수답변 가능)가 고용과 급여, 복지 등 근로조건 악화를 꼽았다. 인력 감축과 구조조정에 따른 노사대립 악화가 우려된다는 답변(16.3%)은 뒤를 이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MBK파트너스와 영풍의 적대적M&A가 지속되면서 임직원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매우 피폐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비즈니스 측면은 물론, ESG경영과 지역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감안할 때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회사의 경쟁력을 훼손하는 행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주총에서는 고려아연 측이 제기한 집중투표제 도입이 최대 쟁점으로 여겨지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대표적인 제도로 알려졌으나, 현재 영풍-MBK 측은 최윤범 회장이 해당 제도를 경영권 유지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법원에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17일 법원은 이에 대한 첫 심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 6곳 중 4곳(글래스루이스, 서스틴베스트, 한국ESG평가원, 한국ESG연구소)은 집중투표제 도입에 대해 찬성을, 2곳(ISS, 한국ESG기준원)은 반대 권고를 내렸다.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의 권고는 객관성을 띠면서 투자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