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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하게도, '혁명적'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심지어 찬양하기조차 하는 좌익 지식인들의 사악한 전통이 있다.
◇장-폴 사르트르
1972년 9월 5일 팔레스타인 테러 조직 '검은 9월단'은 뮌헨 올림픽 대회에 참가하고 있던 선수들을 인질로 잡았고 인질 11명 모두 살해되었다. 극작가, 철학자이자 대표적인 실존주의 주창자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20세기 프랑스 지식인 가운데 지도적 인물로 여겨진다. 그 테러공격 몇 주 후 '뮌헨에 관하여(About Munich)'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이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유일한 무기는 테러 행위다. 그것은 무서운 무기지만 억압받는 불쌍한 사람들은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프랑스 사람들에 대한 FLN[Front de Liberation Nationale, 알제리 민족 해방 전선(1954~1962)] 테러 행위를 시인한 프랑스 사람들은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테러 활동을 시인해야 한다. 이 포기되고 배반당하며 추방된 민족은 자기의 용기와 자기의 증오의 힘을 오직 치명적인 공격들로서만 보여줄 수 있다."
이런 언급은 예외적인 게 아니다. 사르트르와 그의 배우자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둘 다 마오쩌둥의 열렬한 숭배자였고 마오쩌둥이 자행한 '혁명적 폭력'을 더 높은 도덕의 표현이라면서 찬양하였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권(女權)주의 작품 '제2의 성(The Other Sex)' 덕분에 프랑스에서 가장 잘 알려진 지식인이었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말했다. "혁명 정권은 정권을 위협하는 일정한 수의 개인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런 제거와 관련해 나는 살인 외의 어떤 수단도 알지 못한다. 감옥에서 도망치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 1793년의 혁명가들은 아마도 사람들을 충분히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쿠바 혁명의 지도자 체 게바라에서부터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까지 여하튼 자본주의를 반대한 이라면 누구든 그들의 행동들을 찬양하거나 옹호했다. 폴 포트는 200만 동포와 따라서 자기 인구의 20%를 죽게 했었다.
20세기의 지도적인 지식인들 가운데 자본주의의 지도적인 주창자들보다 이오시프 W. 스탈린과 마오쩌둥 같은 독재자들을 숭배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이들 지식인의 자본주의에 대한 증오가 너무 커서 다수가 그 시대 최다 대량 살인자들을 경건하게 숭배하게 됐다. 필자는 여기서 소수의 별난 괴짜 지식인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20세기의 지도적인 지식인들이 그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앙리 바르뷔스 그리고 미셸 푸코
또 하나의 예는 프랑스 작가 앙리 바르뷔스(Henri Barbusse)다. 그는 1916년에 발표된 자기의 전쟁 일기 ≪포화(Under Fire)≫로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그것은 6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바르뷔스는 가장 권위 있는 프랑스 문학상, 공쿠르 상(Prix Goncourt)을 받았다. 그는 후에 소련 독재자 스탈린의 가장 광적인 숭배자 중 한 사람이 되었는데, 그에 관해 그는 이렇게 썼다. "그의 역사는 일련의 엄청난 어려움에 대한 일련의 승리이다. 1917년 이래로, 그의 경력의 어느 한 해도 그가 어떤 다른 사람이든 유명하게 했을 어떤 일을 하지 않고 지난 적이 없다. 그는 쇠처럼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그의 알려진 이름이 이를 말해준다. 스탈린(Stalin)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어로 '강철(steel)'을 의미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cault)는 후기 구조주의의 지도적인 주창자 중 한 사람이자 담화 분석의 창시자다. 그는 1971년 노엄 촘스키와 가진 TV로 방송되는 토론에서 자본주의 엘리트에 대한 자신의 격한 분노를 터뜨렸다. "프롤레타리아는 지배계급에 대한 전쟁을, 그러한 전쟁을 정당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하지는 않는다. 프롤레타리아는 지배계급에 대한 전쟁을, 역사상 처음으로 자기가 권력을 잡기를 원하기 때문에 일으킨다. 프롤레타리아가 권력을 잡을 때 프롤레타리아가 아마도 자기가 이긴 계급들에 대해 폭력적이고 독재적이며 심지어 유혈의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나는 이것에 대해 무슨 이의가 제기될 수 있을지 도저히 알 수 없다."
◇슬라보예 지젝의 대약진운동 찬양
그리고 폭력과 테러의 정당화는, 그것이 자본주의에 돌려지는 한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우리 시대의 가장 저명한 좌익 지식인 중 한 사람, 슬라보예 지젝은 자기의 2021년 책 ≪감히 자기 이름을 말하는 좌파(A Left That Dares Speak Its Name)≫에서 '새로운 공산주의(new communism)'의 찬성론을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가 오늘 필요한 것은, 자기 핵심을 어떤 문화적 무화과 나뭇잎으로 부끄럽게 감추는 좌파가 아니라, 감히 자기 이름을 말하는 좌파다. 그리고 이 이름은 공산주의다." 좌파는, 그는 주장한다, 마침내 더 공평하고 '공정한' 자본주의라는 사회주의 꿈을 포기하고 더 급진적인 '공산주의 법령들'을 제정해야 한다. 명백하게 공식화된 목표로서, 그는 "반대 계급이 파괴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젝에 따르면, 인간 역사에서 가장 큰 사회주의 실험인 1950년대 후기 마오의 대약진 운동은 '사회주의를 우회해서 직접 공산주의로 들어가는' 기회를 제공했다.
◇'프랑크 디쾨터'의 대약진운동 평가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은 마오의 대약진 운동에 관해 아무것도 모른다. 역사가 프랑크 디쾨터는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1958년과 1962년 사이에 이 일대 사회주의 실험의 결과로 적어도 4500만명이 불필요하게 죽었다. 대다수는 굶어 죽었고, 다른 250만은 고문당하거나 맞아 죽었다. 일부러 먹을 것을 주지 않거나 굶겨서 죽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살해되었는데, 그들이 부자였기 때문에, 그들이 발을 질질 끌었기 때문에, 그들이 큰소리로 말했기 때문에 혹은 그들이 무슨 이유로든 간이식당에서 국자를 휘두른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라고 디쾨테는 설명한다. 그리고 지젝이 그렇게 행복감에 젖어 격찬하는 것은 바로 이 '대약진 운동'이다. '슬라보에 지젝의 폭력적인 비전들'이라는 제목 아래 ≪뉴욕 평론(The New York Review)≫에 실린 기사에 붙은 사진에서 독자들은 지젝의 침대 위에 누구 사진이 걸려 있는지 알 수 있다. 바로 대량 살인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