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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술대회의 핵심 주제는 뉴질랜드와 호주 경찰청의 다양성과 포용, 참여 정책이었고, 주최 측에서 특히 관심을 기울인 주제는 테러였다. 지난해 12월 호주에서 발생한 테러에 관한 분석보고와 대응정책을 경찰청장이 직접 발표했을 뿐만 아니라, 런던 경찰청의 대테러국장(Matt Juke)이 기조연설에서 테러에 관한 영국의 최신 정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Juke 국장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인셀'이나 '외로운 늑대'에 의한 자살테러, 총기난사 등이 모두 극단주의와 여성혐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중에서도 '인셀'은 매우 가부장적이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뚜렷하며, 사이버상에서 더욱 극단화되는 특징을 가진다고 한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런던 경찰청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범들을 면밀히 모니터링해 테러 징후를 사전에 포착하고, 사이버상에서 여성혐오와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확산되지 않도록 차단 등 조치를 취하고 있다. 여성혐오와 여성대상범죄가 결국은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테러와 연결되며, 이는 경찰이 젠더폭력을 여성안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 안전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덧붙여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성평등 수준의 향상을 통해 테러범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결국 테러예방에 여성 경찰관들의 역할이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쯤에서 여성경찰관들이 피해자보호나 여성안전이 아니라, '테러' 이야기를 한다니 혹시 낯설다고 느껴진 독자들은 없는지 궁금해진다. 여경들의 역할을 '보호'에 한정하는 고정관념은 지금 우리 경찰의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간 경찰은 여성청소년과에 여성과 아동보호 업무를 전담시키고 여성경찰관들을 주로 배치해왔다. 초점이 '여성' 및 '보호'에 맞춰진 탓인지 구조적인 젠더폭력 문제로 이슈가 확장되지 못하고, 젠더관점이 필요한 사안들은 "여경, 여청기능에서 하는 일"로 간주되는 등 칸막이(pigeonhole)가 세워져 있었던 것 같다.
최근 경찰은 '이상동기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순찰 등 범죄예방 활동을 강화하고, 수사 기능은 수사 본연의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는 아동과 여성의 안전 및 피해자 보호 역할을 여성청소년과에 모아 넣어 그 칸막이를 더욱 두텁고 견고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크다. 이상동기 범죄자들의 특징을 보면, 사회적 불만을 가지고, 사이버상에서 극단적 성향이 강화돼 무차별적 공격을 저지르는, '인셀' 테러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지점에서, 전체 사회 안전의 차원에서 여성범죄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런던 경찰청의 인식과 우리 경찰의 인식 간에 격차가 느껴졌다.
런던 테러국장과 짐바브웨 여성경찰의 질의응답으로 글을 맺고자 한다. 짐바브웨에서 '여경들이 여성과 아동을 돌보는 역할을 하고, 젠더범죄가 전체의 이슈로 확산되지 못하고 있는데, 젠더 관점을 조직 차원의 이슈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떻게 설득했는가'라고 묻자, Juke 국장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는 설득할 필요가 없었어요. 테러 문제에 젠더 관점을 적용하니, 비로소 사회 전체의 안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가 명백히 보였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