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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어느 여교사의 하소연, “당장 그만두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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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09. 04. 18:17

이경욱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공교롭게도 서이초 여교사 사망 사건이 있기 얼마 전 서울 강남 한복판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10년 차 여교사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교직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학생 가르치는 일은 별 부담이 없지만, 학습 이외의 일이 늘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고 말했다. 서류 작성 등 업무는 주로 인터넷 공간에서 이뤄지는 일이고 좀 더 시간을 내 일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며 견딜만하다고 했다.

문제는 학부모와의 관계라며 미간을 찡그리면서 얘기했다. 자신이 근무하는 초등학교는 서울에서도 학군이 매우 양호한 곳에 있어 지방과 달리 학생 수가 우상향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교직원 수가 다른 곳보다 월등히 많다고도 했다. 주변 학원가도 잘 발달해 있어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곳이 돼 자연스럽게 집값이 '넘사벽' 수준이 됐다고 덧붙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들의 사회적 수준이 타 지역과 비교할 때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의사, 법조계, 대학교수 등 이른바 전문직 학부모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었다. 그 학교에 배치됐을 때 들었던 "학부모 조심해야 한다"는 동료 교사의 충고가 점점 마음속 깊은 곳에 불편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급에서 여학생끼리 다투는 일이 있었다.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을 때렸으나 곧바로 화해했고 둘은 즐겁게 어깨동무를 하면서 여느 어린이들처럼 어울려 지냈다. "엇, 이거 별 일 없어야 하는데…." 그러고 며칠 후 맞은 학생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대뜸 "학폭위를 열라"고 요구했다. 교사들이 제일 꺼리는 단어가 학교폭력위원회란다. 드디어 자신에게도 '끔찍한' 일이 벌어지겠구나 하면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학부모는 막무가내였다. 다행히 잘 마무리됐지만 그 후 마음이 늘 무겁고 당장이라고 교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더 굳어져만 갔다고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맞은 학생이 집에 가서 싸운 얘기를 스스럼없이 얘기했지만 학부모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거두절미하고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앞세워 학교를 닦달하기로 마음을 먹었을 것이었다. 선후배 교사들과 만나면 언제 교직을 떠나는 게 좋을지 늘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최근 친하게 지내던 교사 6명이 교직을 그만뒀다.

이 여교사의 사례는 특별하지도, 유별나지도 않을 것이다. 전국의 모든 교사들이 매일 겪고 있는 것일 게다. 초등학교 여교사가 학부모로부터 몹쓸 얘기를 듣고 37년 교직을 미련 없이 떠났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은 천직에 속하지 않는가. 자라나는 2세에게 지식을 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회 규범과 질서, 배려, 자제력, 협동심, 어울려 살아가는 것 등을 총체적으로 가르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교사다. 그래서 교사의 권리는 엄격히 보호돼야 하고 권리가 침해됐을 때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마땅하다. 여기에는 교사에 대한 학부모의 무한한 존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교실에서 교권이 붕괴됐다는 얘기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수십 년 전에도 그랬고 선진국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교실은 지식 전달 역할도 학원에 빼앗긴 지 오래다. 학생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얘기를 교사의 말보다 더 신뢰하는 세상이 됐다.

아무도 교사를 하려 하지 않을 때 우리 아이들은 과연 누구에게 의지해 지식을 전달받고 사회성을 길러갈 것인가. 누구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인가.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전국에서 모인 검정 옷차림의 수십만 명의 교사들이 여의도에 모여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진상 규명과 교권 회복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대규모 가두시위를 벌일 정도로 우리의 교육 현장은 잔뜩 일그러져 있다. "당장 그만두고 싶어요." 그 여교사의 말이 마음을 짓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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