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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구본무 회장과 골프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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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기자

승인 : 2018. 05. 30. 06:00

2006년 늦은 봄으로 기억한다. 고(故)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직접 협력업체 대표들과 ‘우의 다지기’ 골프대회를 열었던 적이 있다. 당시 광주 곤지암 컨트리클럽에는 구 회장을 비롯해 구본준 부회장, 김쌍수 전 LG전자 부회장 등 LG계열사 최고경영자만 10여명, 국내외 협력사 대표 90여명 등 총 100여명이 참가했다. 이 규모는 현재까지도 최대 규모일 정도로 재계에선 이례적인 행사였다.

전성기 시절 구 회장의 골프실력은 핸디 9 정도의 싱글골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이 애용했던 곤지암 CC는 과거 골프 카트를 운영하지 않은 골프장으로 유명했다. 골퍼가 직접 걸으며 라운딩을 해야 한다는 구 회장의 원칙이 반영됐다. 각기 다른 18개 홀을 걷다보면 코스의 진면목도 보이고 동반자와 긴 대화도 나눌 수 있는 등 골프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소 골프 예찬론자이자 임원승진이나 중요한 인재를 등용 시 꼭 한 번 이상은 함께 라운딩을 하는 것을 철칙으로 하던 구 회장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 회장은 이처럼 사람의 인품을 파악하는데 골프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인사추천위원회를 거쳐 이사회에서 선임 된다. 하지만 구 회장은 CEO가 될 만한 임원을 불러 ‘본인 도 모르게 면접’을 진행했다. 바로 ‘골프 면접’이다.

과거 곤지암 골프장에서 주말 골프를 즐겼던 구 회장은 주로 계열사 CEO 및 국내외 협력업체 사장들과 라운딩을 한다. 구 회장은 여기에 CEO후보자들을 멤버로 슬쩍 키워 넣는다. 골프 실력을 보려는 게 아니다. 이보다 골프 매너를 중시하고 옷차림은 물론 특히 골프공이 벙커나 해저드에 빠지는 등의 위기 상황에 처 했을 때 어떻게 헤쳐 나오는지를 유심히 살펴본다.
벙커에서 빠져나온 뒤 벙커의 흩어진 모래자국을 제대로 정리하는 지 등을 지켜보며 사람 됨됨이를 파악한다. 또한 그린에서 ‘스리퍼트’를 하는 등 실수를 했을 때 얼굴표정이나 행동을 보고 경영자로 키울 재목인지 체크한다. 만약 골프 매너를 조금이라도 소홀히 여기거나 실수를 만행하려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경우엔 여지 없이 낙제점을 받게 된다. 골프를 같이 치면서 성품과 자질을 자연스럽게 관찰할 수 있었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지식’자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인성’자산을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봤던 구 회장의 인재상이 투영된 결과다. 직접 골프면접까지 보면서 까다롭게 인재경영을 펼쳤던 덕에 구 회장 시절 LG는 전사적으로 우수한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해마다 주요 계열사 CEO들이 직접 해외로 나가 우수 인재사냥에도 나섰다.

“인재를 뽑으려면 유비가 삼고초려 하는 것 같이 CEO가 직접 찾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합니다. 좋은 인재가 있다면 회장이라도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이 같은 구 회장의 인재 사랑은 밑받침이 되면서 결국 ‘일등 LG’로 자연스럽게 귀결된 셈이다. 지난 20일 구 회장이 타계했다. 하지만 구 회장이 직접 뿌린 인재경영의 씨앗은 앞으로도 LG의 든든한 재목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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