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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가(家)의 자녀교육 원칙을 굳이 하나만 들라고 하면 이처럼 ‘밥상머리 교육’을 손꼽을 수 있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故) 정주영 회장은 따로 시간을 내거나 특별한 방법을 내세워 자녀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다만 아침식사만큼은 가족이 모여서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에는 큰 불호령이 내려지곤 했다고 한다. 그는 슬하에 9남매를 뒀다. 동생도 일곱 명이나 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더욱더 자녀교육에 신경을 썼다.
항상 현장으로 뛰어다녔던 정주영 회장은 따로 시간을 내서 자녀들을 가르칠 시간이 실제로 없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의 둘째 아들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부친은 사업을 확장하느라 쉴 새 없이 바빴다. 1947년 당시 부친은 현대건설을 설립했으며 1957년에는 6·25 때 파괴됐던 한강 인도교 복구공사를 완료했다. 사업에 바쁘다 보니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기 쉽지 않았다. 자녀들 역시 아버지의 얼굴을 자주 볼 수 없었다.
아침에 밥상머리에서 보는 것이 전부였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의 밥상머리 교육은 철저하고 어김없이 이어졌다. 생전에 서울 청운동 자택에서 새벽 5시면 자식들을 집합시켜 아침을 같이 먹고 자식들 이끌고 계동 현대그룹 본사 사옥으로 출근했다. 부친을 따르려면 자녀들 역시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고 습관으로 몸에 배는 건 당연했다.
밥상머리 교육 키워드는 ‘겸손’과 ‘성실’이었다. 예컨대 정 회장이 손자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서 시달려 봐야 나중에 자가용 샀을 때 기쁨을 안다”라며 역정을 내기까지 했다고 한다.
한국경제를 주름잡던 재계 총수였지만 자녀가 물질만능주의에 중독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름철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사라지는 매미는 한겨울 평평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는 뜻의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을 자녀교육의 철학으로 삼았던 것이다.
요즘 재벌가 3세들의 갑질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창업세대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일반인 삶과는 차원이 다른 부를 누렸지만 제대로 된 인성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특히 떠 받들이기만 하는 환경에서 자라 겸손과 배려보다는 오만과 독단에 빠졌던 게 아닐까.
이들은 경영능력도 인정 받지 못한 상태에서 소수 지분만으로 회사를 ‘쥐락펴락’을 하다 보니 ‘경영 리스크’는 덩달아 커지고 있다. 향후 한국경제가 상당수 재벌 3·4세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참에 재벌가의 체질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자녀교육에 유독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의 교육철학이 새삼 절실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