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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을과 함께 풍경이 되어버린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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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하동/글·사진 김성환 기자

승인 : 2017. 11. 28. 09:37

경남 남해·하동...지역명사와 함께 하는 문화여행
여행 톱/ 독일마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남해군과 행정안정부가 2002년 조성한 독일마을. 이국적인 건축물과 수려한 풍경때문에 찾는 이들이 많다.


사람이 곧 풍경이다. 한 자리에 발 딛고 긴 세월을 흘려보낸 이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역사가 되고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이들은 또 당당하게 솟은 큰산처럼, 흔들리지 않는 바다처럼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며 찾아오는 길손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여행 톱/ 석숙자
석숙자씨는 1973년 간호사로 독일로 떠났다가 30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2002년 독일마을에 정착했다.


◇ 독일로 간 ‘코리안 엔젤’…파독 간호사 석숙자

석숙자 씨(69)는 스물여섯 살이던 1973년에 독일로 갔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그때 한국의 말단 공무원 월급이 1만5000원이었어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면 10배인 15만원을 받았어요.”
1960년대 한국은 참 못살았다. 세계에서 두번째로 가난했다. 국민소득이 불과 76달러였다. 당시 태국은 220달러, 필리핀은 170달러였다. 한국은 먹고 살기 위해 외국에서 돈을 빌려야 했다. 미국에 원조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마침 독일(당시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으로 경제부흥기를 맞았다. 산업발달로 노동력이 부족했다. 광부와 간호사 등 고단한 분야에서는 일손이 더 모자랐다. 한국은 독일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를 담보로 차관을 들여오기로 했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로 보냈다.
1960~70년대 1만8900여명의 ‘청춘’들이 독일로 갔다. 이들은 이역만리에서 억척스럽게 일했다. 광부들은 지하 1000m 깊이의 갱에서 섭씨 30도가 넘는 열기에 맞서며 석탄을 캤다. 매일 죽음과 사투를 벌였다. 간호사들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만큼 큰 체구의 독일인 환자들을 상대했다. “처음에는 말이 안통해 시체닦기부터 중환자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까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했다”고 석씨는 회상했다.
문화적 차이로 설움도 컸다. “고사리나 밤을 삶아먹으면 가난해서 말(馬)이 먹는 것을 먹는다고 핀잔을 들었다. 마늘 냄새가 난다며 손가락질도 받았다.” 그래도 견뎠다. 성실함으로 인정을 받았다. 한국 광부들은 독일에 모인 여러 나라 광부들 가운데 일을 가장 잘 한다고 소문이 났다. 한국의 간호사들은 ‘코리안 엔젤(한국에서 온 천사)’로 불렸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은 번 돈의 80%를 고스란히 한국의 가족에게 보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이들이 한국에 송금한 돈은 1억153만달러였다. 어떤 해에는 대한민국 국내 총 수출액 대비 1.9%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 돈은 고속도로와 공장을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이를 발판삼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기적의 시작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땀과 눈물이었다.  

여행 톱
독일마을 파독전시관에는 파독 간호사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자료와 물품들이 전시 중이다.
여행 톱/ 파독 전시관
파독전시관에 전시 중인 파독 광부들의 물품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 ‘독일마을’이 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에서 편안하게 제2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남해군과 행정안전부가 2002년에 조성했다. 지금은 약 30가구가 터를 잡고 살아간다. 마을 뒤에는 파독전시관이 있다. 당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의 생활상을 오롯이 엿볼 수 있는 자료와 물품들을 전시한다.
석씨도 독일마을이 생길 때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독일마을과 파독 광부, 간호사들을 알리기 위해 힘을 쏟았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캠프를 열고 독일의 맥주를 테마로 축제도 주도했다. 올해 8회째를 치른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이제 남해를 대표하는 이벤트가 됐다. 파독전시관을 찾는 이들을 위해 몸소 안내와 해설도 하고 있다.
“지금 젊은이들은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가족을 위해 희생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그리고 이들의 노력이 지금 대한민국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합니다. 남해는 공기가 맑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에요. 독일마을도 참 예쁘죠. 그러나 독일마을에 오면 풍경만 보지 말고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새로운 삶을 꾸리고 있는 제2의 터전이라는 것을 꼭 알아주기 바랍니다.”
마을 들머리까지 마중하는 석씨의 미소가 긴 여운을 남겼다. 그의 미소는 계절 교차할 무렵, 남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일지 모를 일이다.
 

여행 톱/ 시인 최영욱
지난 15년간 평사리를 ‘토지 문학의 메카’로 일군 최영욱 시인.


◇ 소설 ‘토지’의 땅을 현실로…시인 최영욱

경남 하동에도 풍경이 되어버린 사람이 있다.
하동 출신 시인 최영욱(60)은 평사리 문학관 관장이다. 평사리는 하동 악양면에 있다. 평사리는 작고한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 무대다. 구한말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 평사리 최씨 일가의 몰락과 재건의 과정을 그린 대작이 ‘토지’다. 집필기간만 1969년부터 1994년까지 무려 25년이다. 평사리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진주와 서울, 중국 용정 등으로 뻗어나가며 장대한 시공간을 아우른다.
소설 속 주인공의 집인 평사리 ‘최참판댁’을 짓고 ‘박경리 토지길’을 조성하는 등 평사리 일대를 ‘토지 문학의 메카’로 만든 것이 바로 최영욱이다. 시인은 매년 평사리 곳곳을 걸으며 소설 속 인물과 배경을 설명해주고 최참판댁 안채에서 이야기 콘서트도 진행 중이다. 박경리 선생의 10주기가 되는 내년 5월에는 추모문학제도 열 계획이다. 

여행 톱/ 최참판댁 별당
평사리 최참판댁의 별당채. 소설 ‘토지’의 시작과 마지막 장면의 무대다.


시인이 이토록 평사리에 애정을 쏟는데는 이유가 있다. 시인에게 ‘박경리’는 인생의 옹이처럼 박혀있다. 어린시절 박경리 선생의 산문집 ‘문학을 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를 읽고 문학도의 꿈을 키웠다. 박경리에 몰입해 젊은시절을 보낸 그는 불혹의 나이에 시인이 됐다. “소설의 공간을 현실에 옮기기 위해 2001년부터 박경리 선생님이 살고 계시던 강원도 원주까지 일곱 번을 찾아간 끝에 허락을 얻어냈어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당 등으로 구성된 최참판댁은 허구의 공간을 눈 앞에 만들어 놓은 곳이다. 그런데도 실제 있었던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인은 이런 사람들에게 가람들마다 깃들어 있는 소설 속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겨울 두 모자가 만석집 사대부가에 동냥을 왔다가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어죽습니다. 죽으면서 ‘오늘 우리 두 입은 먹을 것이 없어 지금 죽지만, 너희집 곳간에는 먹을 것이 많아도 먹을 입이 없을 것’이라는 저주를 합니다. 이것이 소설 토지의 모티브가 됩니다.” 섬진강과 지리산의 아픈 역사, 너른 무딤이 들판(평사리 들판)이 있는 이 일대가 소설의 무대로 낙점된 이유다.  

여행 톱/ 평사리 들판
최참판댁 앞마당에서 바라본 무딤이(평사리) 들판. 추수가 끝났지만 들판은 여전히 문학적 감수성을 자극한다.
여행 톱/ 섬진강
가을과 겨울이 교차할 무렵, 섬진강은 유독 맑다.


시인의 이야기는 인공의 공간을 더욱 애틋하고 친근한 현실로 만든다. 사위인 김지하 시인을 ‘평생의 원수’라고 불렀던 일, 박완서 선생과의 친분, 살뜰했던 손자 사랑 등 박경리 선생의 생전 모습까지 곁들인다. 그러면서 박경리 선생과 ‘토지’와 평사리에 얽힌 자신의 삶을 문학적 영감으로 승화시킨다.
시인이 문학관을 지킨지가 벌써 15년째다. 시인은 8년여 만에 최근 세 번째 시집을 내놨다. 제목은 ‘다시, 평사리’다. 시인에게 이 땅은 시와 삶이 함께 어울리는 존재의 이유다. “다음에는 소설이 아닌 나의 시(詩)로 여러분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의 시가 곧 평사리일지 모를 일이다.
가을의 끝을 부여잡고 겨울이 온다. 시인과 함께 ‘토지’ 속을 실컷 여행하고 나오다 마주친 무딤이 들판은 추수가 끝났는데도 풍성하게 보였다. 섬진강은 또 유난히 맑고 고요했다.

[여행 메모]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사람이 곧 풍경입니다’라는 주제로 ‘지역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볼것과 놀것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닌, 사람이 주제가 되고 기준이 되는 새로운 여행을 제안한다. 이를 위해 전국에서 14명의 지역 명사를 발굴했다. 남해 독일마을의 파독 간호사 석숙자씨와 하동 평사리 문학관장 최영욱 시인도 여기에 포함됐다. 각각 남해 독일마을 관광안내소(055-867-8897)나 평사리 문학관(055-882-2675)을 통하면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남해·하동/글·사진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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