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영 기자]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한지 13일로 57일째를 맞았다. 지난해 12월 19일 출범한 비대위는 그동안 당 쇄신 차원에서 정치·경제·복지·사회를 총망라하는 각종 정책을 쏟아냈다. 그러나 두달여 간 비대위가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정책 중에 구체적인 후속 대책이 나온 경우는 극히 드물다.
비대위는 지난해 12월 27일 첫 회의에서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의 ‘회기 내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기득권 포기 차원에서다.
하지만 개헌을 하지 않고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는 자체 시스템을 만들겠다던 비대위는 현재 이 문제를 전혀 논의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비대위원은 이날 “불체포 특권 포기 시스템은 한번 만들어 당론으로 정하면 임기와 상관없이 계속 적용할 수 있어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다”며 “4·11 총선 공약으로 제시하고 시스템은 19대에서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공정거래법 강화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친족회사의 내부거래 정기조사, 소득세·법인세 최고구간 신설, 강력한 재벌개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재벌개혁 정책은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속도조절에 들어간 모습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그동안 한국 경제 구조가 대기업 위주였던 것은 맞지만 비대위의 재벌개혁에는 상생(相生)이 빠졌다는 지적이 많다”며 “당의 고정 지지층인 고소득 계층의 반발이 극심해 당분간은 고강도 재벌 개혁에 대한 논의는 속도 조절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복지정책과 관련, 야권과 경쟁하듯 ‘무상 시리즈’를 내놓고 있다. 이 가운데 만 0~5세에 대한 전면적인 ‘무상보육’과 총 2조~3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는 ‘고교 의무교육 전면실시’는 국가재정을 고려한 신중한 공약제시와는 거리가 먼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비대위가 의결한 △100만 가구 전월세 대출이자 경감 △모든 가맹점 신용카드 수수료 1.5% 수준 인하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로 상향조정 △만 0~5세 전면적인 무상보육 △고교 의무교육 전면실시 등도 구체적 재원마련 대책과 같은 후속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를 두고 당 안팎에서는 비대위가 선거를 의식한 ‘급조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수도권 의원은 “비대위는 꼭 해야 할 일과 당장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 구분해야 한다”며 “비대위 외부인사는 당을 떠날 사람이고 그 후폭풍은 남은 우리들이 다 감당해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이날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 최광 한국외대 교수 등 경제 전문가 100여명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심성 퍼주기식 공약 남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새누리당의 △초·중·고교생 아침 무료제공 △0~5세 전면 무상보육 △고교 의무교육 △남부권 신공항 △사병 월급 인상안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을 대표적인 포퓰리즘 공약으로 꼽았다.
이들은 “재원조달 대책 없이 막무가내로 재정지출을 늘리면 필연적으로 젊은 세대의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만약 세금을 늘리지 못하면 재정적자와 국가부채가 늘어나 남미나 남유럽 국가들처럼 경제위기나 재정 파탄 상황으로 몰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