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경쟁업체들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KT-KTF 합병 관련 이슈가 어떤 조건을 달고 승인되느냐로 옮아가고 있는 분위기다.
원칙적으로 합병 불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속내는 향후 방통위가 합병 승인 과정에서 조건을 최대한 달아 인가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경쟁업체들의 현실적 인식인 셈이다.
특히 KT-KTF의 합병과 관련 방통위가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공정위도 합병 자체보다 합병 후 시장 활성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심사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지는 것도 경쟁업체들이 조건부 합병에 실질적인 관심을 두는 이유다.
결국 경쟁업체들은 방통위와 공정위에 KT-KTF 합병 반대 의견을 적극 개진하면서도 합병 후 시장 경쟁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최소화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관련 이통업체 한 고위 관계자는 "KT-KTF 합병이 경쟁업체의 반대로 승인되지 않을 수 있겠냐"며 "경쟁업체들은 합병 반대를 강력히 주장하면서도 (합병이 승인돼도) 최대한 조건을 달아 KT의 시장 지배력을 최대한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 찾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경쟁업체들은 직간접적으로 합병 조건을 알리면서 승인 심사에 최대한 반영되도록 골몰하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합병 불가를 외치고 있는 경쟁업체들은 정부와 KT를 압박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합병 인가에 대비해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 내기 위해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경쟁업체들이 내세우는 합병조건으로 유력한 것은 시장점유율 제한, 주파수재배치 문제, 시내망 분리, 가상이동망사업자(MVNO) 시장 진입 완화 등을 들 수 있다.
우선 시내 가입자망 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은 KT의 유선시장 지배력 전의에 따른 경쟁 제한성을 일정부분 해소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경쟁업체들은 여기고 있다.
KT의 시내 가입자망은 광케이블 50.1%와 통신선로 95.6%에 해당하는 기간통신망으로 공기업 시절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됐다는 게 경쟁업체들의 주장. KT-KTF의 합병으로 기간통신망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불공정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쟁업체들은 굳이 KT-KTF가 합병을 해야 한다면 시내망 사업은 별도로 분리시켜야 공정 경쟁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KT-KTF 합병 이후 시장점유율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KT-KTF 합병으로 유무선 통합 시장에서 거대 사업자가 출현하게 될 경우 경쟁 제한적 상황이 발생할 것을 우려해 점유율을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주파수재배치 문제 역시 경쟁업체들이 생각하고 있는 합병 조건이다. KT-KTF가 합병할 경우 전체 통신용 주파수 중 1.8GHz 및 2.1GHz 이동통신 대역과 2.3GHz 와이브로 대역을 포함해 44%(양방향 기준 107MHz)가 집중되게 된다.
이에 대해 업계 한 관계자는 "합병 전에도 KT 및 KTF를 합한 주파수 보유는 동일하게 44%이지만 별도 법인이 한 회사로 합병되면서 경쟁력의 확대를 고려할 때는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며 "주파수 재배치시 참여를 제한하고 후발 또는 신규사업자에게 우선적인 기회를 부여하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통위가 KT-KTF합병과 함께 MVNO의 시장 진입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방통위는 이미 MVNO를 통해 이통시장의 경쟁을 활성화시켜 통신요금 인하 효과를 창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하지만 MVNO를 위한 망 임대 대가를 SK텔레콤 등 기존 사업자 자율에 맡긴다는 게 방통위의 입장으로 케이블TV협회 등 이통사업 진출을 준비하는 진영의 반발을 사왔다. 특히 KT-KTF까지 합병할 경우 후발 이통사업자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케이블협회 등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케이블협회 관계자는 "합병된 KT까지 망 임대 대가를 자율적으로 산정하게 되면 후발 사업자들의 수익성도 예상하지 못하는 단계에서 이통시장에 뛰어들 수는 없게 된다"며 "이통 사업자를 늘려 경쟁을 통해 통신료를 낮추겠다는 게 방통위의 입장이라면 망 임대료에 대한 대가를 후발 사업자들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정부가 산정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경쟁업체들의 주장에 대해 KT 관계자는 "이미 SK텔레콤이 KT-KTF를 합친 것 보다 더 큰 이윤을 창출하는 상황에서 경쟁업체들의 시장지배력 전이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며 "주파수 부분도 대역폭이 많은 것이 아니라 질적인 부분이 중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가입자망 분리시 BT 등 해외 사례처럼 설비투자 감소와 요금인상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도 KT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