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IB전문가로 정평이 나있었던 만큼, 업계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전해지는데요. 지난해 3월 임기를 마치고 NH투자증권을 떠난 이후에는 고문이나 자문 역할도 맡지 않았었죠. 업계에선 정 전 사장이 퇴임 이후 PE를 설립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많았는데요. 재판 때문에 관련 절차를 밟기가 쉽지 않다는 말도 나오곤 했습니다.
결국 정 전 사장은 제안받은 메리츠증권 상임고문 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메리츠금융그룹은 정 전 사장의 서울대 경영학과 82학번 동창인 김용범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곳이기도 하죠.
메리츠증권은 부동산금융 부문에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IB영역에선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받았죠. 지속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선 IB역량 강화가 필수였고, 이에 IB부문에 정통한 정 전 사장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이죠.
정 전 사장은 대우증권 출신인데, NH투자증권에서 IB부문을 10년 넘게 이끌어왔고 2018년부터는 NH투자증권 사령탑을 6년간 맡아왔습니다. NH금융그룹 자회사 CEO들의 임기가 길어도 3년에 못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 전 사장의 IB 경쟁력과 경영능력은 인정됐던 셈이죠.
정 전 사장은 설연휴가 지난 다음달부터 메리츠증권으로 출근합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2월 6일은 정 전 사장의 징계취소 소송 1심 판결이 나옵니다. 정 전 사장은 2023년 11월 옵티머스 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 혐의로 금융당국으로부터 문책경고 중징계를 받은 바 있습니다. 문책경고를 받게 되면 3~5년간 금융사 재취업이 불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정 전 사장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인용하면서 징계 절차는 중지됐습니다. 이 덕에 이번 메리츠증권행도 가능해진 거죠.
또 다음 달 재판에서 승소할 것으로 기대하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이 박정림 전 KB증권 사장과 정 전 사장 모두에게 중징계를 내렸습니다. 이에 불복해 두 사람 모두 법원에 징계 취소소송을 제기했는데, 박 전 사장이 지난해 말 1심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은행권 DLF(파생결합펀드) 사태와 관련해서도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도 중징계를 받았지만, 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했고 모두 승소했습니다.
정 전 사장도 이러한 판례를 근거로 승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당당히 메리츠증권행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 나옵니다. 다만 박정림 전 사장과 달리 정 전 사장이 재판에서 패소하게 되면 메리츠증권과 정 전 사장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우려가 되는 상황입니다.
이번 메리츠증권 상임고문으로써 그의 IB 경쟁력과 존재감이 재차 드러날지, 또 메리츠증권의 IB비즈니스가 한층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