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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기자의 문화路]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의 향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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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5. 01. 13. 13:35

한국에 관한 향기와 그 기억에 관한 '추억 소환' 전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 아르코미술관서 열려
구정아 전시 전경 전혜원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한국에 관한 향기를 주제로 한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어려서부터 탈북하기 전까지 해마다 6월 말 7월 초 온 마을에 백살구향이 넘쳐나요. 매해 4월 중순부터 5월 초까지는 온 마을에 진달래 향이 차고 넘쳐요."/북한 회령(어렸을 때부터 2005년 매년 4월부터 7월)

"새벽 세네시, 이태원 클럽 모퉁이 근처 식당의 스테인리스 만두 찜기에서 어둡고 짙은 공기와 함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흰 수증기."/한국 서울(2014)

한국에 관한 향의 '기억'과 그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제 '향'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 중이다. 지난해 4∼11월 이탈리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선보였던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Odorama City)의 귀국보고전이 열리고 있다. '오도라마'는 영어로 냄새를 뜻하는 '오도'(odor)와 '드라마'(drama)를 합쳐 만든 단어다.

'오도라마 시티' 전시는 지난해 6∼9월 전 세계인들 대상으로 수집한 '한국의 도시, 고향에 얽힌 향의 기억' 600여편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25명의 기억을 선정한 뒤 다양한 국적의 전문 조향사들과 협업해 만든 17개 향이 디퓨저를 통해 분사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구정아 전시 전경2 전혜원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한국에 관한 향기를 주제로 한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이번 귀국보고전에서는 한국관 전시를 위해 수집한 이야기 600여 편을 공개한 것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설희(덴마크 쿤스트할 오르후스 수석 큐레이터) 예술감독은 "베니스에서 보여주지 못한 600여편의 이야기를 이번에 보여주고자 했다"면서 "개인의 소소한 경험에서 비롯된,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들이 많다"고 밝혔다.

전시장 1층에서는 산동네에서 사용했던 연탄 냄새, 학생 시위와 데모 현장에서 맡았던 최루탄 가스 냄새, 어릴 적 서울 미아리에서 농사꾼들이 우마차를 끌고 와서 퍼간 대변 냄새, 바닷가 시골마을 조그만 항구에서 뙤약볕 아래에 말라가던 굴 껍질에서 나는 짠내 섞인 비린내, 친구집 앞마당에 있던 아카시아 향기 등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공중에 매달린 커다란 종이 위에 깨알 같이 쓰인 글들을 읽다 보면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관한 추억을 소환하는 듯하다.

구정아 전시 전경 4 전혜원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한국에 관한 향기를 주제로 한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2층으로 올라가면 수집한 이야기들을 토대로 조향한 17개의 서로 다른 향기가 소형 뫼비우스 링에 담겨 곳곳에 매달려 있다. 전시장은 텅 빈 공간에 매달려 있는 뫼비우스 링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 시각적으로는 다소 밋밋한 풍경이다.

이설희 감독과 함께 한국관 전시를 공동 기획한 야콥 파브리시우스(덴마크 아트 허브 코펜하겐 관장) 예술감독은 "각각의 조향사가 어디서 영감을 받아 그 향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돼 있다"면서 "17개의 향기는 한국 현대 역사의 향"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향으로 "옛날 가전제품의 향"을 꼽으며 "관람객 각자가 좋아하는 향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개인적인 추억도 불러일으키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구정아 전시 전경3 전혜원 기자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귀국전이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한국에 관한 향기를 주제로 한 구정아 작가의 '오도라마 시티' 전경. /사진=전혜원 기자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숨겨진 한 개의 향을 찾아보는 묘미도 있다. 2층 전시장을 나오면 어딘가에 작가가 숨겨놓은 '어시장의 향'이 있다.

전시는 향을 통해 고도성장하며 급변한 한국의 시대상을 반추해보는 측면에서 감동이 있다. 다만, 여러 향이 한 공간 안에 있다 보니 향들이 뒤섞여, 각각의 향이 어떠한지 그 특징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은 아쉽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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