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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역시 한국처럼 사법당국이나 금융기관을 사칭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한국이 중국 조선족들을 동원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범죄를 벌이는 것과 비슷하게, 러시아인을 상대로 한 우크라이나 사기범의 금융사기범죄가 부쩍 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 방송 RBC는 9일(현지시간) 연방보안국(FSB) 공보실 성명을 인용, "최근 러시아 전역에서 전화 사기꾼들이 FSB 것으로 추정되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며 이 같이 보도했다.
공보실은 "형사고발 통지 등은 당사자에게 서면으로만 직접 발송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면서 "어떤 사람이 전화를 걸어 'FSB' '내무부' '조사위원회'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 반드시 의심해 봐야 한다"고 밝혔다.
공보실은 '은행보안서비스'나 '안전계좌', '중앙은행 단일결제계좌'와 같은 문구를 사용하는 경우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화금융사기범은 범행 대상자에게 부채 정보를 거론하며 신용(체크)카드 정보, 여권 또는 사회보장번호 코드를 요청하고 재산이나 교통수단을 긴급 판매하라고 종용한다고 한다. 이런 제안을 받으면 주저 없이 전화를 끊어야 한다는 게 FSB의 권고다.
전화금융사기꾼은 자주 금융기관 보안 담당자로 가장해 '고객님'의 돈을 안전한 계좌로 이체하거나 현금을 인출해 택배기사에게 주도록 설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특히 '공시된 것으로 추정되는 형사사건을 종결한다'는 구실로 자금을 갈취하는 경우 역시 흔한 수법이라는 설명이다.
공보실 관계자는 "전화사기범은 자신의 신분증 사진이나 '명령 문서' 사본, 수사 당국의 수사에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힌 공문서 등을 문자메시지나 소셜미디어 메신저를 통해 보여줘 신뢰감이 들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화금융사기 피해자들은 전화사기범으로부터 '기밀을 유지하라'는 설득을 당했으며, 국가기밀을 공개하거나 협조를 거부한 혐의로 기소당할 수 있다는 협박을 당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러시아에서 전화금융사기는 한국과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이뤄지지만, 러시아 극동 연해주 지방에서는 최근 지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최첨단 인공지능(AI)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시민은 "최근 FSB 등 국가기관 공무원을 사칭하는 전화금융사기보다는 지인 목소리 흉내를 내 급전을 요구하는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사람이 전화나 소셜미디어의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AI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귀띔했다.
러시아 극동연방대학교(FEFU)에 재학 중인 아나스타샤(여.23세)씨는 "요즘 지인과 똑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와 급하게 돈을 요구하는 범죄 피해가 엄청나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은 친구나 선후배, 교수들은 다른 교수나 대학 총장, 부총장 등 휴대전화 주소록에 수록된 대학 관계자를 사칭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전화금융사기범이 대상자 휴대폰에 미리 사기프로그램을 설치, 대상자가 해당 휴대폰으로 통화한 상대의 음성이 순식간에 파악된다. 사기범은 대상자가 앞서 통화한 상대의 음성으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