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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빈자들의 처지 개선, 오직 시장경제에서만 가능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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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08. 03. 17:00

자본주의는 강자가 아니라 약자가 더 필요
독일 <디 벨트> 前편집장 라이너 지텔만
독일 <디 벨트> 前편집장 라이너 지텔만

◇ 라스버드의 스미스 비판

스미스는, 그 저작이 차후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의지할 기초를 제공하는, 개척자였다―하이에크와 미제스는 그를 존경하였다. 그러나 스미스의 저작은 또한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의 집단 안에서부터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리버테리언 미국 경제학자 머리 N. 라스버드(Murray N. Rothbard)는, 자기의 기념비적 저작 ≪애덤 스미스 이전의 경제 사상. 경제 사상사에 관한 오스트리아학파 시각(Economic Thought Before Adam Smith. An Austrian Perspective on the History of Economic Thought)≫에서 자기의 스미스 비난에서 점잖게 말하지 않고, 스미스가 결코 그가 흔히 묘사되었던 자유 시장 경제학 옹호자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라스버드는 스미스의 잘못된 노동 가치설이 그를 카를 마르크스의 선조로 만든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확실히 그 스코틀랜드 철학자를 인용하고 그를 자기들 자신의 창시자의 궁극적 영감이라고 부르며 맞아들이는 것이 정당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라스버드에 따르면, 스미스는 기업가의 경제적 기능을 이해하지 못했고, 리처드 캉티용(Richard Cantillon) 같은 경제학자들이 제공한 통찰들이 부족하기도 했는데, 국가가 부과하는 이자율 상한, 사치 소비에 대한 중과세 그리고 경제에 대한 광범위한 정부 개입을 지지하였다. 개인적인 수준에서, 스미스는 또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그가 이전에는 자유 무역 운동을 했었지만, 자기 생애 마지막 열두 해를 스코틀랜드 관세청장으로서 보냈기 때문이라고, 라스버드는 말한다.

◇ 스미스를 좌파로 보는 것은 잘못

이 비판의 많은 부분은 확실히 정당화되지만, 애덤 스미스를 좌익 인사로 부르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스미스의 좌파 경향을 강조하는 미국 철학자 새뮤얼 플라이섀커(Samuel Fleischacker)조차도 스미스가 반드시 자신을 오늘날의 사회 민주주의자들과 동일시하거나 현재 복지 국가를 옹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이 비판에 맞서는 것은 정부의 경제 개입에 관한 스미스의 깊은 불신과 시장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는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그의 거의 무한한 신뢰이다. 경제가 망할 때, 스미스에 따르면, 그것은 결코 기업가들과 상인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항상 국가에 의해서다: "큰 국가들은 사적 방탕이나 부실 관리로 결코 가난해지지 않는데, 하기야 그것들이 때때로 공적 방탕이나 부실 관리로 가난해지기는 한다,"라고 그는 자기의 주요 저작 ≪국부론≫에서 썼다. 

그리고 그는 낙관적으로 추가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상태를 더 낫게 하려는 한결같고, 항구적이며, 끊임없는 노력은, 원래 사적인 부(富)뿐만 아니라 공적이고 국가적인 부도 얻는 원리는, 정부의 낭비뿐만 아니라 행정의 가장 큰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종종 개선을 향한 자연적인 상황 진전을 유지할 만큼 아주 강력하다. 동물 생활의 알려지지 않은 원리같이, 질병뿐만 아니라 의사의 불합리한 처방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흔히 체질에 건강과 활력을 회복한다." 

은유는 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민간 경제 행위자들은 건강하고 긍정적인 발달을 대표하지만, 정치인들은 자기들의 터무니없는 규제들로 경제를 방해한다. 애덤 스미스는 오늘날 만약 그가 더욱더 경제에 개입하는 유럽과 미국의 정부들과 자기들이 시장보다 더 똑똑하다고 믿는 정치인들을 볼 수 있었다면 매우 회의적이었을 것이다. 

◇ 기업가 기능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아쉬워

스미스의 단점 중 하나는 그가 기업가의 경제적 기능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는데, 이것은 후에 조지프 슘페터 같은 사상가들에 의해 아주 탁월하게 상세히 설명되었다. 잘못해서, 그는 기업가를 혁신자로서보다는 주로 관리자나 기업 지도자로서 보았다. 

스미스는 "공감(empathy)"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그는 자기의 저작 어떤 지점에서도 그것을 기업가 정신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는 고객들 자신들보다 더 낫게 그리고 더 일찍 자기 고객들의 요구와 감정을 이해하는 스티브 잡스와 그 밖의 기업가들에서 공감이―그리고 "탐욕(greed)"이 아니라―참으로 기업가적 성공의 근거이고 자본주의의 기초라는 점을 안다. 

스미스가 기업가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부자들에 관해 명백하게 분개하는 것은 참으로 스미스가 정치적 스펙트럼의 왼쪽에 있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특징이다. 그러나 이 점은 그가 근로자 상황을 개선하는 것을 옹호하는 데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스미스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은 재분배와 과도한 국가 개입을 통해서는 생기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경제 성장의 결과일 것인데, 후자는 무엇보다도 한 가지, 즉 경제적 자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시장경제가 필요한 이는 강자가 아니라 약자

경제적 자유가 지배하고 시장들이 확대되는 정도로, 사람들의 생활수준도 역시 오를 것이다. 스미스의 탄생 300년 후 그리고 그의 대작의 출판 약 250년 후, 우리는 그 도덕 철학자이자 경제학자가 옳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는 성장의 기초인데, 만약 국가가 경제에 너무 많이 간섭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의 삶이 향상될 것이고, 특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이 그럴 것이다.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바로 이 상관관계들을 자기들의 시장 경제 옹호의 중심에 두지 못했다. 시장 경제가 필요한 사람들은 주로 강한 사람들이 아니다. 왜냐하면 강한 자들은 어떤 체제에서건 하여간 잘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생활 상태를 개선할 유일한 기회가 자유 시장 경제에 있는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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