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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후지와라 오페라단 ‘유즈루’ “일본 오페라 대표하는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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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3. 07. 11. 10:04

"원형에 충실했던 무대...번민과 갈등에 초점"
오페라 유즈루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오페라 '유즈루'의 한 장면./제공=후지와라 오페라단
일본 작곡가 이쿠마 단이 작곡한 단막 오페라 '유즈루(夕鶴·The Twilight Heron)'는 1952년 오사카 아사히 회관에서 초연됐다. 이후 현재까지 국내외에서 800회 이상 공연하며 일본 오페라 역사상 최다 공연 횟수를 가진 작품이다. '유즈루'는 일본어로 된 오페라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작품의 시초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민담 '은혜 갚은 학'과 비슷한 '학 아내'라는 일본 민담을 극작가 준지 기노시타가 1949년 희곡 '유즈루'로 탄생시켰다. '대본에서 한 개의 단어 수정도 안 된다'는 조건으로 작곡가 이쿠마 단은 이 희곡을 오페라로 만들어 발표했다.

현재까지 '유즈루'가 일본을 대표하는 창작오페라로 인정받는 이유는 일본 내에서 수많은 제작진과 프로덕션에 의해 제작된 횟수가 순차적으로 쌓여 왔다는 점에 있다. 또한 해외에서도 작품성을 인정받는 일본오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195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공연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 십 차례 해외에서 공연됐다. 이쿠마 단은 처음부터 이 작품을 세계무대를 겨냥한 일본오페라로 기획하고 작곡을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서구의 오페라하우스가 자체적으로 공연할 정도로 이 오페라가 인정받은 이유는 지고지순한 사랑과 돈 앞에 이성을 잃은 인간의 탐욕, 학으로 대변되는 순수한 자연과 인간으로 상징되는 욕망의 대립이라는 보편적인 주제 때문이다.

'유즈루'는 오늘날에도 일본의 다양한 오페라단체에서 꾸준히 공연되고 있다. 필자는 동아시아 오페라 연구를 위해 지난 몇 년간 일본에서 공연된 '유즈루' 공연을 찾아가 관람해왔는데, 이번에는 유서 깊은 일본의 민영 오페라단인 후지와라 오페라단에서 공연한 '유즈루'를 보고 왔다. 이 작품에는 10명 정도의 어린이 합창단을 제외하고는 단 4명만이 작품에 등장한다. 소규모 출연자에 무대 또한 주인공 부부가 사는 산골의 오두막이 전부여서 상당히 단출한 무대를 유동적으로 꾸밀 수 있다. 이번 오페라에서도 고전적인 원근법이 적용된 무대 위에 부부의 집을 상징하는 일본식 가옥만 세워졌다. 초반에는 이러한 무대가 너무 간단하다 여겨졌으나 궁박한 산골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 원형에 충실했기 때문에 성악가가 불필요한 움직임을 할 필요가 없었고, 무대나 객석이나 음악에 집중할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타츠지 이와타의 연출은 이처럼 작품의 원형과 전통에 충실한 형태로 전개됐다. 주변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오직 주인공의 번민과 갈등에 초점을 맞췄다. 남편의 탐욕에 희생되는 여인의 가련함, 이와 대비되는 눈 내리는 산골의 서정적 풍경과 아이들의 천진한 합창을 부각시켰다.

오페라 유즈루 1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오페라 '유즈루'의 한 장면./제공=후지와라 오페라단
이달 1~2일 양일간 일본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테아트로 질리오 쇼와 극장(Teatro Giglio Showa)에서 열린 공연은 더블캐스트로 진행됐다. 1일 공연에서 학 아내 츠우 역을 맡은 미에코 사토는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간판 소프라노로 활약 중이다. 그는 작은 체구가 믿어지지 않도록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강렬한 음색을 들려줬다. 특히 일본 전통 멜로디가 강하게 느껴지는 츠우의 아리아를 호소력 있게 소화했다. 연기력 또한 빼어나서 오페라와 음악극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동아시아 초기 오페라 특유의 낭송조 대사와 도약이 심한 음정 등을 무리 없이 표현하며 비련의 여인상을 훌륭히 완성했다.

이밖에도 순박하지만 미련한 남편 요효 역할의 테너 다쿠야 후지타, 그를 충동질해 학 아내의 정체를 밝히려 하는 지인 운즈 역의 바리톤 히로유키 에하라, 소도를 노래한 베이스 타로 시모세 등도 제 몫을 다해 줬다. 특히 히로유키 에하라는 현재 유명 방송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어서 그를 응원하기 위한 팬들의 환호성이 매우 컸다. 작품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 정도라면, 이러한 인기인의 캐스팅이 창작오페라의 활성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쿠마 단이 작곡한 음악은 일본 전통선율을 가미한 가운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관현악법을 구사하고 있다. 마이쿠 시바타가 지휘한 테아트로 질리오 쇼와 오케스트라는 이러한 음악적 특징을 잘 살려 연주했다. 특히 운즈의 카바티나에서 현악의 피치카토와 플루트, 오보에의 오블리가토(보조하는 조주(助奏))가 일품이었다.

작곡가가 밝힌 대로, 오페라 '유즈루'에는 세계무대에 내놓을 일본오페라를 창작하고 싶다는 바람이 강하게 담겨있다. 이번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공연에서도 봤듯이 그 프로젝트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공연예술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면, '유즈루'는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도 모른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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