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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로 꼽히는 파키스탄에서는 올해 최고 기온 53도를 기록한 폭염이 네 차례 이어진 후 곧바로 재앙에 가까운 홍수가 덮쳤다. 이번 홍수로 파키스탄에서는 약 1300명이 사망하고 최소 3300만명이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파키스탄 전체 식량의 절반을 생산하는 신드주(州)에서는 농작물의 90%가 파괴됐고 200개 이상의 다리와 4800㎞ 가량의 통신선도 망가져 식량위기도 가시화되고 있다.
전례없는 재앙같은 홍수의 주요 원인으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강해지고 불규칙해진 몬순이 멈추지 않고 쏟아낸 집중호우로 꼽힌다. 지난달 파키스탄의 일부 지역에는 평년보다 500~700% 많은 비가 쏟아졌다. 레만 장관은 "사람들이 자연재해라고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움찔한다"며 "지금은 인류세(Anthropocene: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일컫는 말)다. 이번 사태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재앙이다"라고 말했다.
레만 장관은 4일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파키스탄과 같은 국가를 강타하는 기후재앙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 세계 탄소 배출량 목표와 배상금을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기후변화는 북반구 선진국들이 화석연료로 산업혁명을 이루는 등 경제성장 과정에서 비롯된 결과물인데 기후위기에 거의 책임이 없는 파키스탄 같은 남반구의 개도국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부유한 국가들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주장한 레만 장관은 "스스로 회복하기 위한 기반시설을 구축할 수도 없는 적도 인근 국가들에게 (선진국의) 무책임한 탄소 소비의 타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하는 기후 방정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비율은 채 1%가 되지 않는다. 미국(21.5%)이나 중국(16.4%)과 같은 국가들이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촉발된 기후위기에 직면한 것은 파키스탄과 같은 남반구 개도국이 대부분이다. 레만 장관은 이 국가들이 "배상금도 받지 못한 채 손실과 피해를 입고 있다"며 "예상보다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는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남반구 국가들의 손실과 위험은 제27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7)에서 논의하는 의제에 포함돼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