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사업모델 과감하게 탈출해야
파이낸셜 스토리 다시 구성할 것"
그간 '사회적 가치·동반성장 강조
일각 "尹 경제개혁 염두 둔 것" 분석
19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7일 그룹 계열사인 서울 광진구 소재 워커힐호텔에서 확대경영회의를 주재하며 기존의 파이낸셜 스토리를 수정하고 경영시스템을 확 바꿀 것을 주문했다.
최 회장은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최창원 SK 디스커버리 부회장과 전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등 30여 명의 경영진을 소집한 이 자리에서 “현재 만들어 실행하고 있는 파이낸셜 스토리는 기업 가치와는 연계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 가치는 재무 성과와 미래 성장성과 같은 경제적 가치(EV), 사회적 가치(SV), 유무형의 자산, 고객가치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돼 있다”며 “이 중 어떤 요소를 끌어올리고, 어떤 요소에 집중해 기업 가치를 높일지 분석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이낸셜 스토리는 최 회장이 2020년 확대경영회의에서 언급한 단어다. 매출과 영업이익 같은 재무 성과만 보지 말고 이해관계자들의 신뢰를 얻어 시장이 매력적으로 보는 기업이 되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SK그룹 관계자는 “파이낸셜 스토리 취지는 시대 변화에 맞춰 미래에 어떤 기업이 될 것인지에 대한 SK의 전략과 비전을 시장과 공유해서 공감을 얻자는 것”이라며 “계열사마다 시장과 사회적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들을 발표했고 현재도 계속 파이낸셜 스토리를 써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간 SK 계열사들이 가장 공들인 파이낸셜 스토리는 ‘넷제로’(탄소중립)다. 올해 확대경영회의에서 가장 심도 있게 논의된 세션도 넷제로다. 넷제로는 글로벌 대기업들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고 내놓은 전 세계 공동 목표다. SK는 이 같은 시대 변화에 맞춰 먼저 그룹 차원에서 지난해 7월 국내 기업 최초로 ‘SK탄소감축인증센터’를 신설했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업체 최초로 ‘RE100’(2050년까지 재생에너지 100%를 사용하는 글로벌 캠페인)에 가입하는 등 친환경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탄소배출업종에 속한 SK이노베이션은 자체적으로 ‘카본 투 그린’ 전략을 세웠다. SK텔레콤은 ICT에 기반한 고효율 통신장비 개발 및 사옥 냉난방 조절 등을 통해 작년 사회적 가치(SV) 2조원을 돌파했다고 지난달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올해부턴 이 같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다시 짜라고 주문한 것이다. 최 회장은 매해 열리는 확대경영회의에서 최근 5년간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동반성장을 강조했지만, 올해는 기업가치 극대화를 강조했다. 그동안 그가 던진 경영 화두는 △딥체인지를 통한 대기업의 사회문제 해결 동참(2017년) △사회적·경제적 가치 동시 추구(2018년) △구성원 행복이 회사 목표(2019년) △파이낸셜 스토리 기반 사회적 신뢰받는 기업(2020년) △‘좋은 파이낸셜 스토리’ 완성해 이해관계자 공감·신뢰받는 기업(2021년)이었다.
일각에선 최 회장의 발언은 윤석열 대통령이 “민간·시장 주도로 경제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 경제 구조 개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정책방향은 전임 정부와 달리 기업 규제 혁파와 친기업 환경 조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 회장은 새로운 핵심성과지표(KPI), 투자·예산·조직 등 회사 내 자원 배분, 평가·보상, 이해관계자 소통 방안 등도 기업 가치 모델 분석 결과와 연계해 재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대로 된 파이낸셜 스토리를 만들고 이를 단계적으로 달성해 신뢰도를 높이게 되면 기업 가치도 극대화될 것이라는 우리의 가설을 스스로 입증해 내자”고 했다.
패널 토론 형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최 회장을 비롯한 CEO들은 경제 위기 상황 인식을 함께하고, SK의 새로운 경영시스템 구축과 신사업 모색 방법론 등에 대해 외부 투자전문가, 학계 인사 등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