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현수정의 씨어터토크]줄거리·대사 없이 수많은 이야기 품은 연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www.asiatoday.co.kr/kn/view.php?key=20210818010009680

글자크기

닫기

전혜원 기자

승인 : 2021. 08. 18. 10:44

사진임종진_제공극단무천_우리가서로알수없었던시간_6
극단 무천의 연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의 한 장면./제공=극단 무천
김아라 연출의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은 줄거리와 대사가 없는 연극이다. 그런데 공연을 관람하고 나면 관객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마음에 품을 수 있다. 20여 명의 배우들이 수백 벌의 옷을 갈아입으며 표현하는 온갖 인간군상이 관객 각자의 기억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공연은 수많은 큐브가 놓여 있는 야외무대에서 진행된다. 여기에 배우들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한다. 배낭을 풀고 앉아서 땀을 닦는 장년층, 조깅하는 여인, 전동휠을 타는 청년, 비행기 승무원들, 만삭의 여인, 청소노동자, 굽은 허리를 한 채 손수레를 미는 노인들, 술 취한 사람, 도둑 등이 일상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그런가 하면 상대방에게 총구를 겨눈 군인, 포로, 시체를 연상케 하는 마네킹을 옮기는 무리, 관을 끌고 가는 인물, 돌멩이를 던지며 투쟁하는 사람들, 커다란 종이배를 운반하는 사람들, 방호복을 입고 들것을 든 사람들 등은 비극적인 역사 혹은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줄거리가 없어도 공연의 흐름은 분명히 느껴진다.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며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은 극의 후반부 어느 순간에 서로를 알아보며 포옹하는 모습을 보인다. 즉, 고립과 소외의 상태에서 만남과 화합으로 나아가는 전개다. 그 장면은 마치 죽음 이후 천국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세상에 대한 희망적 비전을 환상적으로 그려놓은 것 같기도 하다.

대사가 없는 침묵극이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언어 이외 요소들을 통해 표현된다. 무엇보다도 다양한 인물들의 특징을 예리하게 잡아내서 몸으로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가 중심에 있지만, 이와 함께 음향과 음악이 청각적으로 극을 전개한다. 앞부분에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듯 단절된 느낌의 소리가 강조된다면, 뒤로 가면서 선적으로 이어지는 소리와 음악이 쓰인다. 특히 현악기는 화합의 장면을 비롯해 환상성을 느끼게 하는 부분에서 활용되며 희망을 강조한다.
음향이 직접적이기보다 상징적으로 쓰이면서 작품의 의미를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도 주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바람 소리와 함께 극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불규칙한 쇳소리인데, 이는 시계 초침을 의미하면서도 또 다른 해석의 여지를 열어 놓는다. 나아가 음악이 배우들의 행동과 반대 분위기로 사용되기도 한다. 돌을 던지며 투쟁하는 사람들의 장면에서 상대적으로 평온하고 느린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이는 생소한 느낌을 주면서 관객들이 그 장면을 다시금 깊이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한편, 이 공연은 화해의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 에필로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시금 사람들이 등·퇴장을 반복하며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하차투리안의 ‘왈츠’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섬광처럼 희망을 보여주긴 했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서로를 알 수 없는’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사진임종진_제공극단무천_우리가서로알수없었던시간_4
극단 무천의 연극 ‘우리가 서로 알 수 없었던 시간’의 한 장면./제공=극단 무천
이처럼 다시 고립의 상황으로 돌아오지만, 이 작품은 결국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주제를 강조하는 중심인물이 한 명 있으니, 바로 거리의 노숙인이다. 그는 관객의 눈에 뜨일 듯 말 듯 존재하며 모든 상황을 바라본다. 정동환이 연기하는 이 노숙인은 희로애락을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안타까운 상황을 목격하면 팔을 쳐들고 미세하게 반응하기도 한다. 그러한 그는 극의 마지막 장면에 환한 조명을 받는데, 하얀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의 모습으로 변해 있다. 즉, 그는 신의 시선을 상징하는 인물로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관객들을 ‘서로를 알 수 없었던 시간’에서 ‘알 수 있게 된 시간’으로 이끌어간다. 잘 알려진 존재들의 이미지를 통해서이다. 미디어 아트로 영사되는 피에타상, 십계명 석판을 들고 등장한 모세 등의 종교적인 이미지, 아틀라스처럼 지구를 짊어진 노인을 비롯한 신화적 이미지, 그리고 찰리 채플린 등의 대중문화 아이콘…. 관객은 일상적 인물들과 뒤섞여 나오는 이들을 보면서 개인적 기억과 사회적 기억을 연결하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다.

원작자인 페터 한트케는 연극 ‘관객모독’,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기존의 연극적 틀을 깨며 새로운 방식의 소통을 추구한 작가다. 이 작품 역시 언어 중심 연극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김아라 연출은 이 작품을 1993년 혜화동 1번지 개관공연으로 선보였고, 한참 후인 2019년에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무대화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극단 무천의 30주년 기념 공연으로서, 내용을 수정·보완해 문화비축기지T2 야외무대에 올렸다. ‘광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을 잘 표현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수많은 큐브를 통해 산 자들의 의자(존재)와 죽은 자들의 비석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무대 활용이 매우 독창적이었다. 이러한 무대에서 연극계를 지켜온 원로들과 젊은 배우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인간군상 모습이 큰 여운을 남긴 공연이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겸임교수)

현수정 공연평론가
전혜원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