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볕 한 줌은 나락 한 섬' 가을 정취는 익어가고
봉숭아 꽃물 손톱에 남으면 소녀들 '첫사랑의 설레움'
오늘(9월 7일)은 절기상 풀잎에 맑은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white dew)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 무렵에는 밤에 기온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기에 포함되어 있는 수증기가 엉겨 풀잎에 이슬로 맺힌다. 또 아침과 저녁으로는 서늘하거나 차가운 기운이 돌 뿐만 아니라 한낮에도 선선한 바람이 분다. 그리고 이 무렵에는 여치를 비롯한 풀벌레 소리는 계속되지만 매미 소리는 현저히 준다. 그러면서 대기는 맑고 하늘은 높은 초가을의 전형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갈수록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러지고, 느티나무 잎에서 점점 초록색이 가시면서 노란색이 나타나고 담쟁이덩쿨, 벚나무, 회양목, 화살나무 등의 잎 가운데 붉게 단풍이 든 것이 보이는 등 일부 나무들의 잎에서 변색이 일어나 가을의 정취가 완연해진다.
백로는 9월 초순에 들기 때문에 일반 달력상으로도 가을이다. 하지만 아직 기온은 늦여름의 영향이 남아서 낮에는 더운 편이다. 특히 북태평양 고기압이 늦게까지 한반도에 머물 때는 늦더위가 적지 않은 위세를 떨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더위가 오래 가진 못한다. 태양은 이미 가을의 문턱을 넘어선지 한 달이 넘었기에 낮에는 자못 더워도 조석으로는 선선한 바람이 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가지 못하는 것을 일컫는 ‘봄 추위와 노인의 건강’이라는 속담과 같은 뜻의 ‘가을 더위와 노인의 건강’이라는 속담도 있다.
‘가을 햇볕 한 줌은 나락 한 섬’ 가을은 익어가고…
한낮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백로 절기는 명실상부하게 가을의 정취가 묻어나는 계절이다. 이 무렵 귀뚜라미의 가냘픈 울음소리가 더 처량하고, 삽상한 산들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에 길가의 코스모스가 한들한들거리는 모습은 초가을의 정취를 한껏 자아낸다. 백로 절기는 달력상 가을로 치는 9월이기도 하지만 촉각과 시각에 나타난 자연의 변화로 가을이 되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때다. 백로는 명실상부하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증언하는 절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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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꽃물 남으면 소녀들은 ‘첫사랑의 설레움’
흔히 들국화로 통칭되는 국화과의 식물 가운데 개미취, 벌개미취, 쑥부쟁이, 금불초(金佛草), 과꽃 등은 여름부터 꽃이 피지만, 구절초(九折草)와 산국(山菊) 그리고 감국(甘菊)은 백로 무렵부터 피기 시작하여 10월까지 피어나는 온전한 가을꽃이다. 예전에는 이 무렵에 아녀자들은 손톱이나 발톱에 봉숭아 꽃물을 들였다. 봉숭아꽃과 잎을 백반을 함께 섞어 찧어서 손톱이나 발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싸서 하룻밤을 묶어두면 그곳에 봉숭아 꽃물이 연분홍색으로 곱게 드는데 그 물이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 끝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에 따라 소녀들은 가슴을 설레며 어서 첫눈이 오기를 기다렸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백로 무렵부터 버섯의 철이다. 산속의 죽은 밤나무나 참나무에서 자라는 자연산 표고도 이 무렵부터 채취할 수 있다. 참나무 뿌리에 주로 기생하는 능이라는 버섯은 9월부터 10월까지 채취가 가능한데 백로와 추분 어간에 가장 많이 난다. 또 인삼처럼 사포닌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사삼(沙蔘)이라고도 불리는 더덕도 백로 어간부터 채취된다. 대체로 백로 무렵부터 먹딸기라고도 불리는 까마중의 녹색 열매가 까맣게 익는데 달고 맛이 좋아 과거에는 어린아이들이 들에서 놀면서 많이 따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