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에 규정돼 있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상한액이 현실과 동떨어져 농축산업이 고사 직전으로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이와 관련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최근 음식물·경조사비·선물 상한액을 각각 3만원·5만원·10만원으로 정한 정부 시행령 원안을 확정했고, 한우·화훼 등 농축산물에 대한 예외 조항도 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권익위가 원안 그대로 강행하면서 농축산업계의 반발도 한층 더 강해지고 있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19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매번 농민들에게 양보하라고 해서 지금까지 참아왔지만 김영란법으로 피해를 보게 생겼다”고 말했다.
화훼협회 관계자는 “화환 등 화훼는 고유의 풍속으로 애경사에서 주고 받는데 무슨 뇌물이냐”면서 “엉뚱하게 농축산물에 포인트가 잘못 맞춰져 있다”고 주장했다.
농축산업계 반발의 근저에는 김영란법이 현실을 도외시했다는 점이 자리잡고 있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상한액 10만원 때문에 1등급 등심 2조각으로 선물세트를 만들 수 없는 것 아니냐”면서 “한우 대신 수입육 선물세트가 횡행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직·간접적 피해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강행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김영란법 시행령(안)에 대한 검토 의견’에서 선물시장을 5만원 이상으로 한정할 경우 6317억~7373억원 감소하고, 10만원 이상으로 제한하면 4419억~5162억원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선물 수요 감소로 인해 농축산업의 생산·취업·고용이 각각 1조5197억~1조7751억원, 2만6954~3만1483명, 3687~4306명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에서 명절 선물 등 소비재·유통업에 미치는 피해액은 상한액이 5만원, 7만원, 10만원일 경우 각각 2조원, 1조4000억원, 9700억원으로 추정됐다.
화훼업계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연 매출이 반토막 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화훼협회 관계자는 “화환과 난을 합치면 연 1조원에서 1조1000억원 규모의 매출을 보이는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50%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농축산물을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우협회 관계자는 “국내산 농축산물에 대한 예외 조항이 필요하다”고 했고, 화훼협회 관계자도 “김영란법에서 화환·난 등 화훼를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식품부 역시 “국내산 농축산물 수요가 감소하고 수입산으로 대체될 경우 그간 시장개방에 대응해 정부가 추진해 온 농축산물의 고급화 정책과 상충될 수 있다”며 농축산물의 김영란법 적용대상 제외를 검토 의견으로 제시한 상태다.
하지만 농축산물만 김영란법에서 제외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는 “특정품목만 제외하면 다른 업계에서도 같은 주장을 할 것”이라며 “모든 의견을 반영하기 시작하면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대안으로 농식품부는 금액 기준 상향 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한 상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법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어려울 경우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액기준 상향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