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머시 가이스너 뉴욕연방은행 총재의 재무장관으로 내정될 것이란 언론보도가 나온 21일 다우존스 종합지수는 6.5% 폭등한 데이어 공식 발표한 24일에는 4.9%나 뛰어 8000 밑에서도 바닥을 확인하지 못하던 지수가 11% 이상 수직상승했다. 이른바 ‘가이스너 효과’라 할만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임(大任)을 40대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스너에게 맡겼다. 오바마가 직접 표현했듯이 '사상 유례없는 금융 위기'와 갈수록 심화되는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시장에서 환영하는 인사인 가이스너를 내세우도록 한 것이다. 그는 워싱턴 정가와 재무부에서도 `이방인`이 아니다. 2003년 뉴욕연방은행 총재에 취임하기전 18년동안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팀, 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두루 거쳤다. 다트머스 대학에서 아시아학 학사학위를,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국제경제학과 동아시아학 석사를 받았으며 일본어와 중국어에도 능통한 가이스너는 국제적 안목도 갖췄다는 평가다.
가이스너는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당시 로버트 루빈 재무부 장관에 의해 재무부 차관보로 발탁된 뒤 30대 후반에 국제담당 차관을 지냈으며, 특히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한국과 브라질에 대한 지원 협상을 주도한 아시아통이다. 올해 불거진 금융위기 진행과정에서 중요한 길목마다 정부의 유동성 지원 결정에 칼자루를 쥐고 행사했다. JP모건의 베어스턴스 인수과정에서 중재 역할을 했으며, 9월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파산 및 보험사 AIG의 구제를 주도했다. 부시 행정부의 금융위기 대응책을 설계한 인물이지만 좀처럼 언론에 노출되지 않다가 정작 오바마 정부에서는 경제 정책 수장으로 전면에 나서게 됐다.
오바마 정부의 재무장관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한 임무를 짊어진다. 우선 7000억 달러(약 1000조원)의 구제 금융을 어디에 투입할지 결정하게 된다. 금융회사와 기업의 회생 여부가 그의 손에 달린 것이다. 주요 20개국(G20)과의 경제외교 책임자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가 거의 한 묶음이 돼 돌아가는 상황이라 위기 탈출을 위한 글로벌 공조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가이스너가 부통령과 국무장관을 제치고 오바마 정부의 2인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그래서 나온다. 오바마가 당선된 이후 누가 재무장관이 될지에 세계적 관심이 쏠린 것도 그 때문이다. 위기의 진앙이 미국이라는 점에서 세계 경제가 다극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지만 ‘아메리카 파워’는 여전히 막강하다. 가이스너가 앞으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각국의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가이스너는 풍부한 경험을 앞세워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이 발탁한 ‘루빈 사람’이다. 루빈 라인은 자유무역을 존중해 노동조합이나 진보주의자들로부터 공화당에 더 가깝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가이스너를 발탁한 것은 발등의 불인 글로벌 위기를 뛰어넘지 못하면 이념이고 정책 노선이고 다 소용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스너의 등장은 한국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는 한국과 인연이 깊다. 기획재정부의 한 간부는 “잘 활용하면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11년 전 외환위기 때 한국을 직접 찾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선진 7개국의 100억 달러 지원 방안을 도출해 내는 데 기여했다. 지난달 한국은행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간 300억 달러 통화 스와프 체결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렇다고 모든 점에서 우리와 이해를 같이하지는 않는다. 그는 한국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800억 달러 규모의 아시아통화기금(AMF) 추진에 대해선 부정적이다. 미국 중심의 국제금융 구도가 흔들리는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기기 때문이다. 강한 달러를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가이스너는 우리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 직접 참여해 지켜봤기 때문에 한국을 기본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그동안 그와 맺어놓은 각종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해 위기극복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