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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호전다실 박재형 대표 “차 한잔의 평등이 프란치스코 정신”

[인터뷰] 호전다실 박재형 대표 “차 한잔의 평등이 프란치스코 정신”

기사승인 2022. 05. 3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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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속프란치스코회 종신서약한 박재형 대표
청빈과 돈벌이 양립에 고민...영적 가난 이해
누구나 참여하는 무료 차시음회, 신앙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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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통인동 호전다실에서 박재형 대표가 보이차 상품을 개봉하고 있다. 호전다실은 자체 차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도매로 유통한다. 재속프란치스코회에 속한 박 대표의 테이블 위에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상이 늘 놓여있다./김현우 기자 cjsso2112@
서울 종로구 서촌에 가면 누구나 향기로운 차(茶)를 무료로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호전다실이다. 이곳에선 남녀노소, 지위고하, 내·외국인 차별 없이 찻자리에 동석한다.

호전다실은 이미 젊은 층에겐 잘 알려진 서촌 데이트 코스 중 하나다. 이곳을 운영하는 박재형 대표는 한국천주교 재속프란치스코회 회원이다. 프란치스코회의 가르침인 ‘청빈(淸貧)’의 실천으로 시작한 무료 시음회는 그의 차 사업에 날개를 돋게 했다.

박 대표는 천주교 신앙생활의 최고 동반자로 차를 꼽는다. 모두가 평등한 찻자리야말로 천주교의 정신이 서린 곳이라는 생각에서다. 한국천주교가 초기 선교 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외쳤던 ‘하느님 앞에 모든 이가 평등하다’는 바로 그 정신, 이게 찻자리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다음은 최근 호전다실에서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천주교 신자로 굳이 수도회까지 가입하게 된 계기가 있나.

“재속프란치스코회는 출가자가 아닌 평신자를 위한 수도회다. 유일하게 교황의 인준을 받은 평신자 수도회로 역사가 깊고 정통성이 있다. 수도원에 입회하게 된 계기는 결혼 후 신앙 회복을 위해서였다. 예전에는 성당을 평범하게 다니던 신자였는데 결혼 후 성가정(聖家庭)을 이루고 싶었다. 성가정은 하느님을 체험하는 친교의 현장으로서 거룩한 가정을 말하는 개념이다.”

-부부가 같은 천주교인인데 같이 신앙생활을 해서 좋은 점이 있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는데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였다. 인간이 수천년 넘게 풀지 못한 게 종교 간 갈등인데 가정 안이라고 갈등이 쉽게 해소될 리가 없었다. 한때는 ‘당신만 아니었으면 우리 집이 싸울 일이 없다’며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같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배우자를 찾았다. 부부가 같이 믿으면 문화와 사고를 공유할 수 있고, 진심으로 마음을 모을 수 있다.”

-천주교 내 수도회가 많은데 프란치스코회를 선택한 이유는.

“모태 신앙인으로 세례명이 프란치스코다. 신부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정작 어릴 때는 세례명의 뜻도 몰랐다. 신앙을 둘러싼 부모 사이의 불화로 신앙에 냉담한 기간이 있고 난 뒤 종교적 갈증이 있었던 것 같다. 20대 때 어른들과 함께 법정 스님을 만나뵌 적이 있다. 법정 스님이 내 세례명을 듣더니 ‘나의 무소유는 성 프란치스코에서 왔다’고 직접 말씀하셨다. 법정 스님 이야기를 듣고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삶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이게 신앙회복의 계기가 됐다. 수도원에 들어가려면 지원 기간이란 게 있고 5년 정도 교육받는다. 2021년에서야 종신서약을 받았다. 종신서약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중간에 가난과 돈 버는 게 양립할 수 없다는 회의로 과정을 멈췄기 때문이다.”

-재속프란치스코 수도회 입회 후 느낀 가난은 어떤 것인가.

“처음에는 가난과 돈 버는 것 사이에 갈등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알게 된 가난는 단순한 가난이 아니었다. 우리 수도원은 독특하다. 수도원에 속한 김창선 다미아노 신부님은 ‘수도원에 천국가려고 오지 마라. 이미 여러분은 자격이 있다. 수도원에 온다는 건 기도하는 활동 이상으로 사회 속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행동으로 주변 사람이 스스로 감명받아 따라오는 게 프란치스코회다. 또 프란치스코회 신앙관 중에 육화된 예수님, 하강의 예수님이 있다. 천상에 우리와 동떨어진 위대한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곁에 오기 위해 작아지는 예수님, 육화된 예수님의 진심, 그분의 말씀을 되새기고 그분과 소통하는 것, 그 실천이 우리 수도회가 말하는 가난이다. 즉 물질적 빈곤이 아닌 ‘영적 가난’ 개념이다. 난 처음에는 물질적인 가난만 생각해서 수도회를 떠나려고 했는데 영적 가난을 이해하면서 내적 갈등이 사라졌다.”

-무료 차시음이 프란시스칸(성 프란치스코 정신을 이어받아 복음적 삶을 사는 이들)의 실천과 관계가 있다고 들었다.

“무료 차시음은 프란치스칸의 실천 행위다. 누구든지 와서 차 한잔 할 수 있는 공간, 누구든지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무료 차시음은 사업 초기 몹시 어려운 때부터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찻자리가 되게 평등한 자리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 지위가 높은 사람이어도 똑같이 차 한잔을 마시는 자리다.”

-욕망이 극대화를 달리는 게 요즘 세태인데 박 대표는 이런 세상 속에서 청빈을 어떻게 구현하나.

“지금은 농경사회·자급자족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돈 버는 게 쉽지 않다. 올인을 하고 올인해도 벌까말까다. 그래서 다짐했다. 치열하게 벌고, 정당하게 벌자. 내가 하는 건 식품유통업인데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는 제품은 허투루 다뤄선 안 된다. 그러기 때문에 나라에서도 통관·검역을 관리하는 까다로운 사업이다. 통관을 제대로 거쳐 양질의 상품을 유통하고, 정확히 세금을 냈다. 또한 차 관련 정보를 속이지 않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한다. 유튜브 카레라이스TV에 나가서 보이차 사기당하지 말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치열하게 돈 벌고 번 돈 중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면 된다. 일반 기부 외에 프란시스코는 환경보호의 성인이기 때문에 환경운동 관련 지원도 꾸준히 하고 있다.”

- 차(茶) 하면 불교를 떠올리기 쉽다. 천주교인 입장에서 볼 때 차와 신앙 생활과 관계가 있는가.

“차와 불교는 역사적으로 관련이 깊다. 중국 조주 선사의 ‘끽다거(차 한잔 마시라란 선문답)’란 말이 있듯이. 커피와 포도는 서양에서 나온 서양문화고 차는 동양에서 나오는 동양문화다. 동양적인 종교라고 하면 불교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에 천주교를 가져온 선비들은 남인 출신이었다. 남인인 황석영·다산 정약용 등은 차와 관련이 깊다. 한국천주교도 차와 시작점이 같은 셈이다. 천주교인이 평소 차를 마시면서 충분히 기도할 수 있다. 내 경험상 하나님과의 매개체로 차는 최고의 음료다. 관상기도 등을 실제 해보니 차 마시고 했을 때가 효과가 좋았다.”

-천주교인에게 호전다실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나.

“사실 차는 커피나 와인에 비하면 무색무취다. 특별히 천주교인의 음료도 아니고 불자만의 음료도 아니다. 천주교인들은 차를 불교와 연관해서 보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예식 중심의 일본식 다도 관점으로 차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럴 필요 없다. 일상에서 차와 함께하면 된다. 차의 특징은 ‘함께’라는 것이다. 가장 천주교적인 음료인 와인은 아이나 노인, 술이 약한 사람에게 권할 수 없다. 반대로 차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평등하다. 천주교의 박해 속에서 꿋꿋이 신앙생활을 했던 남인 선비들이 차를 즐겼다는 걸 생각해봐라. 충분히 차는 천주교 행사에서 쓸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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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가 프란치스코 형제회 기도문을 읽고 있다. 그는 신앙인으로 삶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고자 늘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무료 차시음도 이런 신앙관이 바탕이 됐다./김현우 기자 cjsso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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