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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참사’로 고령운전 논란 재점화… ‘조건부 면허제’ 급부상

‘시청참사’로 고령운전 논란 재점화… ‘조건부 면허제’ 급부상

기사승인 2024. 07. 0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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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자 200m 거리 역주행… 급발진 주장
CCTV 보니 인도 돌진 후 스스로 멈춰
교통사고 가해자 65세 이상 비중 3년째↑
야간운전 금지 등 고령 면허 제한 촉구
'쾅, 쾅.' 지난 1일 오후 9시 27분께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웨스틴조선호텔 주차장을 빠져나온 진회색 제네시스 차량이 굉음을 내며 4차선 일방통행 도로를 빠르게 역주행했다.

눈 깜짝할 새 이 차량은 왼편 인도 쪽으로 속도를 올려 내달렸고, 보행로 안전펜스를 뚫고 순식간에 보행자들을 덮쳤다. 사고 당시 CCTV 영상에는 편의점 앞 인도에서 대화를 나누던 시민 2명 중 한 명이 뒤늦게 돌진해오는 차량을 발견하고 피하려 했지만, 속수무책으로 변을 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또 다른 영상에선 인도를 걸어가던 한 시민 바로 옆으로 제네시스 차량이 무서운 속도로 시민들을 덮치는 모습이 녹화됐다. 이 영상에선 차량이 지나간 뒤 인도 위에 안전펜스는 물론 연기와 함께 시설물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파손돼 있었다.

차량은 그 뒤로 인도와 횡단보도를 휘저으며 시민들을 들이받았고, BMW와 쏘나타 차량을 연이어 추돌했다. 이후 교차로를 가로질러 반대편 시청역 12번 출구 인근에서야 속도를 줄여 스스로 멈춰 섰다. 역주행한 거리는 모두 200m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고로 9명의 보행자가 숨지면서 경찰은 제네시스 운전자 A씨(68)를 상대로 과실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A씨는 40여 년의 운전 경력 소유자로 현재 경기도 안산 소재 버스회사에 소속된 시내버스 기사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사고 직후 급발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A씨의 과실로 결론이 날 경우 고령 운전자의 운전면허 자격 유지를 둘러싼 논란은 재점화될 전망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3만9614건으로 3년 연속 증가한 동시에 통계 집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0%로 1년 전(17.6%)보다 늘었다.

경찰은 만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들의 운전면허 갱신 주기를 3년으로 정하고, 면허를 갱신하려면 인지능력 검사와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고 있다. 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도 교통안전교육 권장 대상이다.

이에 더해 경찰은 2018년부터 매년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운전면허 자진반납 시 지자체를 통해 현금, 교통카드, 지역상품권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사업을 시행 중이다. 지난해 서울을 비롯해 경기·인천 등 전국 시도경찰청에 운전면허를 자진반납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수는 11만2896명으로, 전체 2% 수준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운전 능력이 저하된 고위험군 운전자를 대상으로 야간운전 금지 등의 조건을 걸어 면허를 발급하는 '조건부 면허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현재 관련 연구용역이 올 12월까지 진행 중인 데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인 만큼 충분한 숙의를 거친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조건부 면허 연구의 경우 수시적성검사와 연계되는 부분이 많이 있어 진행 과정에서 입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령 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가 지속 발생하면서 정부가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사 출신인 김경환 법무법인 위드로 변호사는 "조건부 면허제 도입 필요성에 동의한다"며 "나이가 드신 분들은 순간적으로 반응 속도가 늦어지게 된다. 차량 간의 사고도 있지만 보행자들에게도 고령 운전자는 위험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어 "현재 운전면허 갱신제도가 있긴 하지만 형식화된 수준이라 이 절차를 강화할 필요도 있다"며 "지금은 갱신 기간을 넓게 두고 있는 편인데 기간을 줄여서 고령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검사를 받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교통사고 전문 윤원섭 변호사도 "건강보험공단과 연계해 고령·건강 등의 이유로 운전에 문제가 있으신 분들은 면허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조건부 면허제에 대한 정부의 합당한 기준선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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