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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메밀꽃 융단...순백의 세상, 눈부신 봉평

[여행] 메밀꽃 융단...순백의 세상, 눈부신 봉평

기사승인 2023. 08. 2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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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 봉평
평창효석문화제 4년만에 재개
이효석의 문학적 감성 고스란히
평창효석문화제
메밀꽃 활짝 핀 봉평의 들판. 소금 뿌려 놓은 듯 새하얀 메밀밭을 배경으로 오는 9월 8일부터 17일까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평창효석문화제가 개최된다./ GNC21 제공
메밀꽃은 단풍보다 먼저 가을을 알린다. 강원도 평창 봉평은 메밀의 고장이다. 메밀밭 다 합치면 16만평이나 된단다. 선선해진 바람이 마음속에 슬며시 파고 들면 봉평 들판에 메밀꽃 하얀융단이 곧 펼쳐진다는 얘기다.

"올해 작황이 좋아요. 좀 있으면 꽃이 흐드러지게 필겁니다." 해마다 이 맘때 봉평 효석문화마을 일원에서 평창효석문화제를 개최하는 (사)이효석문학선양회 전병설 이사는 현재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메밀꽃이 뭐 그리 대수일까. 메밀꽃은 하나하나 떼어 놓고 보면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런데 무리지어 피어 있으면 어찌나 환한지 눈이 부시다. 이게 마음을 끈다. 언젠가 오랫동안 메밀꽃을 그려왔다는 어느 작가는 "흰 꽃은 볼수록 포근하고, 녹색의 잎은 한없이 맑으며, 붉은 대공에선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고 했다. 정적이지만 에너지가 느껴지고 억새고 뻣뻣한 모습 이면에 여인의 속살 같은 부드러움을 숨기고 있다고 예찬했다. 천천히 봐야 보이는 것들이란다.

평창효석문화제
해마다 초가을이면 봉평 들판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GNC21 제공
무리지어 피는 꽃은 가산 이효석(1907~1942)의 애를 태웠다. 그는 장돌뱅이의 애환과 부자지간의 끈끈한 정을 소재로 한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메밀꽃 흐드러진 봉평의 가을을 이렇게 묘사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대공·꽃대)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봉평이 그의 고향이다. 소설 속 무대도 여기다. 문학적 감성이 더해지니 예사로이 보이지 않는 봉평 들판이다.

전 이사는 '메밀꽃 필 무렵'을 '근대문학의 백미'라고 소개했다. "메밀꽃을 묘사한 부분이라든지 '흐붓한 달빛'같은 표현 좀 보세요. 작품 전반에 한국적인 정서가 흐르고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표현이 아름답잖아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효석을 한국 근대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메밀꽃 릴 무렵'을 한국 단편소설의 대표작으로 평가해요." 소설 떠 올리면 시(詩) 한 편 생각나고 또 고향이 그리워진다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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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의숲'/ GNC2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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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의숲'에 만들어진 물레방아/ GNC21 제공
봉평 일대에는 '메밀꽃 필 무렵'을 음미할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이 이효석문학관이다. 이효석의 삶과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유품도 전시한다. 여기선 이효석의 생애와 문학세계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꾸며놓은 문학전시실, 자연과 문학이 어우러진 문학정원은 봐야 한다. '효석달빛언덕'은 문학테마 관광지라고 할 수 있다. 초가로 지은 이효석 생가와 그가 평양에 거주할 때 머물던 일명 '푸른집'도 복원돼 있다. 또 소설 속 무대 봉평을 모티브로 한 책 박물관, 근대문학체험관, 이효석문학체험관, 나귀광장 등도 조성됐다. 나귀전망대도 인기다. 효석달빛언덕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효석 문학의숲'은 약 2km의 고즈넉한 산책로다.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하는 장터, 충주집, 물레방아 등이 산책로를 따라 재현됐다. "길을 따라 걸으면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어요. 소설 내용을 돌마다 새겨 놓았고 인형으로 소설 속 장면도 연출했어요." 숲도 좋다. 일대는 평창군이 '효석삼림욕장'으로 지정했다. 산책로는 희귀한 식물이 자생하는 습지를 지나고 가재가 사는 맑은 계곡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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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석달빛언덕' 나귀전망대/ GNC2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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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석달빛언덕' 푸른집/ GNC21 제공
문학과 체험이 어우러진 평창효석문화제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문화관광축제로 여겨진다. 코로나19로 최근 3년간 열리지 못하다가 올해 4년 만에 재개돼 오는 9월 8일부터 17일까지 새하얀 메밀밭을 배경으로 개최된다. 메밀밭만 걸어도 가을을 실감한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나귀를 타고 누벼도 좋다.

오랜만의 평창효석문화제, 무엇이 달라졌을까. 전 이사는 새로 선보이는 야간 프로그램이 많다고 했다. "야간 독서 프로그램이 생겼어요. 야간에 등불을 들고 '달빛흐뭇 낭만로드'를 따라 메밀밭을 지나 이효석문학관에 마련한 독서실까지 걸어가요. 거기서 등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 거죠. 흥정천에 하트 모양의 섬을 조성했는데 올해는 거기서 '불멍 체험'도 할 겁니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유족에게 기증 받은 이효석의 새로운 유품도 전시할 거란다. 여기에 '메밀꽃 필 무렵'을 테마로 한 마당극·인형극, 낭송회 등 대표 인기 프로그램도 여전히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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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나라농원/ GNC21 제공
여정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곳들도 기억하자. 효석문화마을에서 가까운 무이예술관은 메밀밭으로 둘러싸인 풍경이 예쁘다. 폐교가 된 초등학교를 작가들의 작업 및 전시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효석문화마을에서 무이예술관 가는 길에 흥정계곡이 있다. 금당계곡과 함께 평창을 대표하는 계곡으로 꼽힌다. 연중 수량이 풍부하고 물이 맑아 여름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호젓하게 시간 보내기에는 요즘이 낫다.

흥정계곡 초입의 팔석정도 재미있는 곳이다. 정자가 아니라 8개의 바위를 가리킨다. 조선전기 4대 명필에 드는 양사언(1517~1584)이 강릉부사(당시 봉평은 강릉 관할)로 있을 때 여길 지나다 주변 빼어난 풍광에 반했단다. 바위마다 이름을 붙였는데 이게 재미있다. '낚시하기 좋은 바위(석대투간·石臺投竿)' '낮잠 자기 좋은 바위(석실한수·石室閑睡)' '장기 두기 좋은 바위(석평위기·石坪圍碁)' '뛰어오르기 좋은 바위(석요도약·石搖跳躍)'같은 식이다. 당시 새긴 글씨는 지금은 희미해져 알아보기 힘들지만 힘차게 흐르는 계류와 웅장한 바위들을 앞에 두고 즐겼을 양사언의 풍류는 여전히 눈에 선하다. 흥정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허브나라농원도 만난다. 1996년 문을 연 한국 최초의 허브 테마 농원이다. 유럽 스타일의 건물과 아기자기한 정원이 이국적이다. 단풍 내려 앉은 풍경은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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