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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곽노현 교육감 ‘선고 연기’ 요청 적절했나

[기자의눈] 곽노현 교육감 ‘선고 연기’ 요청 적절했나

기사승인 2012. 09. 0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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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석진 법조팀장
아시아투데이 최석진 기자 =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최근 변호인을 통해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상고심이 진행 중인 대법원 재판부에 ‘선고기일을 늦춰 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곽 교육감은 앞서 1·2심에서 경쟁후보자였던 박명기 전 서울대 교수를 매수한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가 인정됐다.

1심 재판이 시작되기 전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속수감됐다가 1심에서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고 풀려났지만, 다시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며 재판부의 배려로 간신히 법정구속을 면한 상태다.

한 마디로 대법원에서 항소심이 확정되면 당장이라도 교육감 직을 내놓아야할 처지다.

언제 물러날지 모를 사람이 인구 1000만 이상인 서울시 교육의 수장으로서 교육행정을 좌지우지하는 것 자체가 교육 현장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이유로 한 시라도 빨리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잖은 상황이다.

더군다나 대법관 결원 사태 등으로 법이 정한 ‘항소심 선고일로부터 3개월’의 상고심 선고 법정시한을 40일 이상 지나도록 선고가 지연되면서 본인의 4년 임기 중 절반 이상 교육감 직을 수행할 수 있는 혜택(?)을 누려온 곽 교육감이 ‘선고 연기’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것이 과연 적절했는가는 의문이다.

곽 교육감이 의견서를 통해 밝힌 ‘선고를 연기해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더 황당하다.

곽 교육감의 주장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관련 법조항에 대한 위헌심판이 진행 중이니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선고가 연기돼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헌재에 위헌소송을 낸 당사자가 바로 곽 교육감 자신이다. 헌재법 41조는 재판에 적용되는 법률(소위 재판의 전제성을 갖춘)에 위헌성이 의심될 때 당사자가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하도록 했다.

이때 법원이 당사자가 지적하는 법 조항의 위헌성 주장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법원은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게 되고, 해당 재판은 헌재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자동적으로 정지되도록 같은법 42조가 규정하고 있다.

곽 교육감의 경우도 이 같은 절차를 이미 1심 재판 도중 거쳤지만 당시 재판부는 ‘후보자 사후매수죄’를 규정한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에 위헌성이 없다고 판단, 곽 교육감의 위헌심판 제청 신청을 기각했다.

곽 교육감은 이처럼 법원이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여주지 않을 경우 당사자가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을 낼 수 있도록 한 헌재법 68조 2항에 따라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1차적으로 법원이 위헌의 의심이 적다고 판단한 경우이기 때문에 법은 이 경우에는 재판이 헌재의 심판과 상관없이 절차대로 진행되도록 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만든 법률에서 지금 같은 경우는 그냥 재판을 진행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헌재법은 혹시 대법원에서 유죄확정 판결을 선고한 이후에 헌재에서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이 내려질 경우를 대비해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조항을 두고 있다.

법대 교수 출신인 곽 교육감이 이 같은 점을 모를 리 없을 텐데 “위헌소송 중인데 헌재에서 위헌결정이 날 가능성(의견서에는 ‘개연성’으로 표현)이 높다”며 “대법원 선고기일을 연기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의견서에서 곽 교육감은 자신의 유죄를 인정한 2심 법원이 공직선거법의 입법취지를 몰각한 위헌적 법률해석을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 만약 대법원이 2심 재판부와 똑같은 해석을 통해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다면 “결국은 헌재에서 법률에 대한 위헌결정이 내려져 재심을 열어야 하는 결과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법학을 전공했고 학생들에게 법을 가르쳐 온 사람이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이렇게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할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곽 교육감은 더 나아가 자신의 위헌심판 제청 신청을 기각했던 1심 재판부도 재판 말미에는 문제의 공선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생각을 바꿨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는 1심 재판 선고 당일 재판장이 “헌재에 꼭 위헌소원을 내 보라”고 말했다는 사실이다.

법원에서 위헌제청 신청이 기각되면 당사자가 헌재에 직접 헌법소원을 낼 수 있도록 법이 정하고 있고 당시 재판장은 단지 그 절차를 의례적으로 설명하고 권유했을 뿐인데, 놀랍게도 곽 교육감은 그것이 재판부가 처음 생각을 바꿔 ‘후보자 매수’ 조항을 위헌이라고 봤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아전인수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곽 교육감은 스스로 의견서에서 “서울교육의 지속과 안정을 위해서는 이 사건이 가급적 빨리 마무리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바로 뒤이어 “그렇다고 법적 절차가 무시되면서까지 서둘러야 할 것은 아닙니다”라고 토를 달았다.

지금 법적 절차를 무시하는 것은 선고를 앞둔 대법원이 아니라 곽 교육감 바로 자신이다. 지난해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절차를 무시한 채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주민투표를 밀어붙이다 민심의 철퇴를 맞고 물러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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