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르포] 평화로운 대지서 항공엔진이…현지 녹아든 한화에어로 美법인 가보니

[르포] 평화로운 대지서 항공엔진이…현지 녹아든 한화에어로 美법인 가보니

기사승인 2024. 07. 01. 11: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글로벌 항공엔진사 공급 부품 생산 한창
현지 근무 환경·분위기 고스란히 녹아
항공엔진 독자화 최종 목표…美핵심거점화
한화에어로 전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체셔사업장 전경.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 뉴욕 중심부로부터 2시간여 떨어진 한적한 동네 코네티컷주. 울창한 숲을 지나 마치 전원주택이 나올 것만 같은 곳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법인(HAU, Hanwha Aerospace USA)이 자리한다. 수개의 층과 단지로 이뤄진, 빼곡한 국내 공장들과 달리 자연과 한데 어우러져 널찍한 대지에 단층의 건물만이 존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로 5년차를 맞은 HAU는 2019년 9월 코네티컷에 위치한 항공엔진부품 업체인 이닥(EDAC)을 인수해 출범했다. 항공기에 들어가는 엔진 부품을 직접 만들어 프랫앤휘트니(P&W), GE에어로스페이스 등 세계 3대 항공엔진사에 공급하는 건 물론, 이들과 공동개발까지 나서고 있다. 수백개의 항공엔진 제조업체가 밀집돼 미국 최대 항공엔진 산업 클러스터로 알려진 이곳에서 HAU는 건물부터 사람까지 자연스레 현지 분위기에 녹아들어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코네티컷주에 위치한 HAU의 주요 사업장을 방문했다. 사업장은 총 4개. 체셔·뉴잉턴·글래스톤베리·이스트윈저 등이다. 통상 항공엔진에 들어가는 부품은 2만여개로, 이중 4개 공장을 포함해 한화 글로벌 사업장에선 6000개가량의 부품을 생산한다. 회사 측은 엔진에 들어가는 중요한 구조물 거의 대부분은 만들고 있다고 했다.

주재원으로 근무 중인 박명환 HAU 재무팀장은 이곳에 한화가 들어선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P&W가 코네티컷에 거점을 두고 있어 영업하기 수월한 데다, 독자 엔진을 개발하는 데 필요한 기술들을 현지 기업들과 공동 연구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즉, 고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1등 파트너로서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독자엔진 개발이라는 목표도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항공 앨리라는 지역적 특징에서 오는 이점도 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코네티컷주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교육기관 등과 협력해 엔진 기술력을 빠르게 향상시키고 있다. 또 현지에서 원자재 조달은 물론 디자인, 제품 설계,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능해 향후 한국형 엔진을 만드는 데 최적의 도움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뉴잉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뉴잉턴사업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얻고 있다는 것은 제일 먼저 방문한 뉴잉턴 공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구축된 선반, 밀링 등 15개 설비는 24시간 쉴새 없이 가동 중이고, 캐파(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한켠엔 커다란 빈 공간을 마련해 뒀기 때문이다.

가장 성장 중인 뉴잉턴 사업장에선 일체식 로터 블레이드 및 디스크를 주로 생산한다. 두 부품은 엔진 내부에서 회전하며 공기를 압축시켜주는 핵심 부품 중 하나다. 회전체는 고정체와 달리 요구하는 기술이 까다로운 데다 2만~3만시간 비행 시, 교체해야 하는 부품이라 수익성도 높다.

타이슨 샌드퀴스트 디렉터는 "2017년부터 현재까지 설비 투자에 3000만달러를 지출했으며, 앞으로 민수 장비에 600만달러, 군수 장비에 3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할 예정"이라며 "장비 활용 개선 등 공정 혁신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갖춰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사업장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항공엔진 부품은 일반적으로 '원재료 검사-기계가공-특수공정-최종검사'의 과정을 거쳐 생산된다. 대부분의 작업은 기계 공정을 통해 이뤄지고 디버링(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공정), 세척 등이 수작업으로 진행되는데, 현장에선 백발의 환갑이 넘은 숙련공들이 활약하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20여분을 이동해 HAU에 부품을 공급하는 대표적인 협력사 버크 에어로스페이스에서도 제품 생산과 투자에 여념이 없었다. 1100만 달러를 들여 이곳 업계에선 거의 유일하게 3D 프린터를 마련했고, 작업장 초입에는 각 라인마다 공정률이 표시되는 데이터 프로그램을 띄워 전 라인 생산율 10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이크 버크 에어로스페이스 제조 매니저는 "3D 프린터를 통해 원하는 제품을 실시간으로 구현하거나 또 수정할 수 있게 됐다"며 "과거 최종 기계 가공까지 3개월가량 걸렸다면 최근에는 1개월이 채 걸리지 않아 한화 등 부품을 필요로 하는 고객사의 제품을 빠르게 접수,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버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의 주요 협력업체 버크 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후 규모가 가장 크다는 체셔 사업장으로 이동했다. 입구로 들어서자 한화솔루션의 태양광 셀이 나열돼 있었다. 한화솔루션은 북미 최대 태양광 단지 '솔라 허브' 조성을 앞뒀으며 현지 시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가장 많은 인원인 280명이 일하는 이곳에서 주로 생산되는 것은 고정체다. PC 팀은 엔진 케이스 등 정밀 고정체를 생산하며, APEX 팀은 OEM사에서 사용하는 엔진 조립을 위한 치공구를 만든다. 주로 엔진 가동 시, 회전하는 다른 부품을 감싸는 '뼈대' 역할을 하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메이저 품목은 3~4가지, 전체로는 70여개에 이른다.

실제로 군데군데 놓여진 작업장 테이블에는 거대한 금속의 케이스가 즐비해 있었다. 육안으로는 크기도 제품도 유사해 보이나 기능도, 보내지는 항공엔진사도 다양하다.

대니얼 굴스카 디렉터은 "구조적으로 각 회사가 원하는 엔진 부품과 기능이 다르다"며 "우리는 수만개에 이르는 부품 중에서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는 일부에 대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작업자들도 여기서 만드는 모든 부품을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 코네티컷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 할 것 같으면 공장 곳곳엔 성조기가 걸려 있었고, 작업자들은 마치 IT 기업에서 볼 법한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있었다. 현지에서 근무 중인 한국 직원은 "이곳에선 가정집뿐만 아니라 일터에서도 국기를 달아놓는 것이 흔한 일"이라며 "헬멧, 작업복 등 중무장을 하는 한국과 달리 여기에서는 눈 건강을 가장 중요시 여겨 작업장 표시인 노란 선 안쪽에서만 고글을 쓰고 작업화를 신는 게 전부다. 안전상으로 크게 문제는 없다"고 귀띔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HAU에서 쌓은 역량을 바탕으로 항공엔진 독자화를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대한민국 창원, 베트남 하노이 등 글로벌 사업장이 마련돼 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항공엔진산업 발달이 정점을 찍고 있는 만큼 이곳을 핵심 거점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큰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항공엔진은 수십 년간의 기술 축적과 이를 지탱할 고숙련 노동자 공급, 막대한 자본 투입이라는 '삼박자'를 갖춰야 하는 선진국 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항공엔진을 설계부터 제조까지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밸류체인 최상위 기업은 미국의 P&W와 GE에어로스페이스, 영국의 롤스로이스 이른바 '빅3'뿐이다.

체셔1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체셔사업장에서 HAU 직원이 항공엔진 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모습.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