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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는 못 읽는 가해자 반성문…“소송 당사자로 보고 기록 오픈해야”

피해자는 못 읽는 가해자 반성문…“소송 당사자로 보고 기록 오픈해야”

기사승인 2024. 06. 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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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기록 열람·등사 재판부 재량…불복 절차 없어
문서송부총탁·민사소송 대안…실효성·보복범죄 우려
법조계 "피해자 기록 열람복사 범위 대폭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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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게티이미지
지난해 11월 경남 진주시의 한 편의점에서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폭행 당한 이른바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최근 SNS를 통해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그동안의 재판기록 열람 복사를 위해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반성문, 최후의견진술서, 의견서 등 가해자가 직접 작성한 문서들이 대부분 불허돼 빠져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의 반성문을 오롯이 판사만이 읽어볼 수 있다는 게, 이러한 사법 관행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이 사례처럼 범죄 피해자는 형사재판에서 제3자로 취급받고 있다. 형사사법절차에서 소송의 직접 당사자는 기본적으로 검사와 피고인이기 때문이다. 피고인의 방어권 존중이라는 명분 아래 정작 사건의 실질적 당사자인 피해자들은 각종 소송 기록 열람은 물론 가해자가 작성한 반성문조차 볼 수 없는 게 현실이다.

4일 아시아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가 반성문·의견서 등 재판 과정의 기록물을 열람하지 못한 사례가 계속되면서 법·제도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진주 편의점 폭행 사건 피해자 외에 황의조 불법촬영 사건의 피해자 역시 황씨의 친형수이자 피고인인 이모씨가 낸 의견서 등 재판기록 열람·복사를 재판부에 신청했지만 불허 결정을 받았다. 피해자 증인신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인천 스토킹 살인 피해자 유족 또한 수사자료 열람·등사를 신청했지만 불허됐다. 가해자는 수사자료는 물론 유족이 낸 탄원서까지 열람해 이를 토대로 수십장의 반성문을 써 법원에 제출한 반면 유족은 그 반성문의 내용조차 볼 수 없었다.

형사소송법 294조의4 등은 범죄 피해자가 공소장 등 소송 기록 열람 및 등사를 법원에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신청을 받은 재판장은 피해자 등의 권리구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거나 그 밖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열람 또는 등사를 허가할 수 있다. 법이 재판부 재량에 맡겨 놓아 판단이 제각각인 셈이다.

법조계는 재판부 '허가'의 허들이 높은 편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윤미 변호사는 "피해자는 형사 공판의 당사자가 아닌 만큼 기록 열람 공개에 있어서 상당한 제약이 있다"며 "소극적인 재판부의 경우 공소장 정도, 적극적이라면 의견서 일부 정도는 허가를 해주지만 가해자의 반성문 같은 경우는 허가가 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 문유진 변호사(판심법무법인 대표변호사)는 "공판기록에 대한 열람복사는 원칙적으로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허가를 하는 것은 맞지만, 현실적으로 피고인 측의 신청에 대해서는 기록 전체에 대해 열람복사를 허락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피해자 측의 신청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개인정보나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공소장 외에는 열람복사 불허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기록 열람이 불허되면 피해자들은 신고한 내용이 공소사실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가해자가 어떤 범죄 사실로, 어느 정도로 기소가 됐는지 확인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제대로 인정되지 않았다면 의견서나 진술을 통해 대응해야 하는데 이 역시도 열람이 불허되면 기회를 잃는다.

나아가 공판기록의 열람·등사가 재판장에 의해 거절되면 불복할 수 없다. 결국 현행법 내에서 재판 기록을 확인하려면 피해자들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문서송부촉탁 제도, 혹은 민사소송 뿐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큰 실효성은 없다는 게 법조계 중론이다. 문서송부촉탁의 경우 검찰이 계류·진행 중인 사건은 거의 보내주지 않거나 보내주더라도 시기가 늦고 내용도 일부만 보내주기 때문에 사실상 적기에 대응하기가 어렵다.

또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내는 경우에도 피해자들은 '개인정보 노출 우려'라는 큰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피해자도 공판기록 열람을 불허했던 법원 결정으로 민사소송을 걸어야만 했고 그 바람에 이름·주소 등이 가해자에게 알려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결국 법조계는 피해자를 실질적인 소송 당사자로 보고 기록 열람·등사 신청에 대한 허가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 변호사는 "피해자 구제가 진심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특정 범죄에 대해서는 기록을 오픈하게 할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문 변호사 역시 "성범죄나 사기범죄와 같이 명확하게 공소장에 피해자가 표시되는 범죄는 실질직으로는 형사소송의 숨은 또 다른 당사자가 피해자가 된다고 보는 것이 맞다"며 "따라서 중대강력범죄와 취약계층대상범죄 등 공소장으로 봐도 피해자가 명확한 범죄에 대해서는 피해자 측의 실질적 방어권 보장을 위해 원칙적으로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피해자에 대한 열람복사의 범위도 확대되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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