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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칼럼] 정전일을 전승절로 우기는 북한의 속내

[주은식 칼럼] 정전일을 전승절로 우기는 북한의 속내

기사승인 2023. 08. 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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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올해는 6·25전쟁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51년 6월 23일 유엔 주재 소련 대표 말리크의 제안으로 7월 10일부터 시작된 정전회담은 1953년 7월 27일 2년 이상의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타결되었다. 유엔군 정전회담 대표 터너 조이 제독이 남긴 회고록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를 보면 회담장은 포탄이 오고 갔던 전쟁터 밖의 말 폭탄을 주고받은 또 하나의 전쟁터였다. 조이 제독은 이 책을 내고 1년 후 서거했다.

정전회담이 이루어진 모습을 담은 기록물이 휴전회담 회의록이며 회담의 결과물이 정전협정문이다. 정전회담 본(本) 회의록은 속기사가 기록하였고 예비 및 실무 회담은 참모장교가 기억을 회상하여 메모를 남긴 기록이 있는데 전쟁기념사업회에서 순차적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이 회의록의 번역이 완료되면 6·25전쟁 정전회담의 실체와 정전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정전체제를 북한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이 일으킨 6·25전쟁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이겼다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김일성, 김정일은 정전체제를 유일지배 체제 강화에 적극 이용했다. 김일성은 1973년에 정전협정 기념일을 조국해방전쟁 기념일로 명명했고 1996년부터 국가명절인 전승절로 부르기 시작했다.

6·25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많은 인적·물적 피해를 남겼다. 먼저 북한과 중공군의 피해를 살펴보면 사망 52만2000명, 실종 포로 10만2000명 비전투사상자 17만7000명, 도합 80만1000명이었다. 한편 연합군은 사망이 한국군 13만7890명, 유엔군 3만7902명이었다. 이렇게 국토 산하를 유린하고 수많은 인명을 도륙하고도 그들은 서부전선 개성은 조금 내려오고(유엔군이 북진하지 못하게 부린 술수였다.) 동해안은 38도 선에서 한참 밀려 올라가 지금의 휴전선에서 정전했다. 공격했던 진영이 인명 피해가 더 많이 났고 영토도 3900㎡ 더 빼앗기고도 이겼다고 헛소리한다.

북한이 인명 손실이 더 크고 피해가 더 큰 데에도 불구하고 승리했다고 억지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군사적으로 전승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전쟁을 일으킨 정치적 목적을 달성했는지 여부이다. 북한이 일으킨 6·25전쟁에서 북한의 목표는 한반도 적화통일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목적이 달성되지 않았는데도 이들이 북한 주민을 상대로 전승절로 혹세무민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저의가 있다.

첫째는 내부 불만 단속 및 주민의 관심전환용이다. 6·25전쟁은 외세의 침략에 맞선 '조국해방전쟁'이며, 정전협정은 "미제의 요청에 따른 것인 만큼 자신들의 승리라고 주장한다.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미제와 남한이 북침했다. 7월 27일 미제와 남한이 김일성 앞에 무릎을 꿇고 정전협정장에 나와서 애걸했다. 적들은 패배했고 북한이 승리했다"고 주민들에게 선전하며 정전협정을 맺은 날이라는 생각을 못 하게 만들었다.

둘째는 패전 책임 전가 및 김일성 주체사상과 백두혈통 지배체제 강화용이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이용하여 정적을 처리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는 전쟁 전에 가짜 김일성으로 등장하여 남로당의 박헌영과 연안파의 무정, 소련유학파 허가이, 갑산파 박금철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별오리 회의를 통하여 패전 원인을 분석하고서도 이를 정적들에게 책임을 전가했으며 유일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활용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과 한국전쟁을 통해 김일성 우상화 놀음에 활용했다.

셋째는 남북 관계에서의 주도권 장악과 정치심리전을 위한 술수다. 전승절로 부르게 된 시점을 보면 1973년으로 7·4 남북 공동성명으로 남북 화해 분위기에서 주민 내부 단속을 하고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6·25전쟁에서 영토 피탈이라든지 사상자를 고려하면 북한의 패배가 분명한데도 이겼다고 우기면 상대방인 한국과 유엔군이 패했다는 논리로 남북 관계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노림수였다. 이러한 용어 선점을 통해 남북관 계 주도권 장악과 통일전선전술의 심리전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의도였다.

넷째는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꼼수다. 현재 북한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미국과 남한의 적대시 정책 때문이고 이러한 적대시 정책이 정전체제에 기인하기 때문에 종전을 통해 평화협정을 체결해 대북 적대시 정책을 끝장내야 한다는 주장을 주민들에게 세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북한이 정전일을 승전일이라고 우기는 속내를 잘 파악하고 있을 때, 우리가 북한에 대한 대응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임은 물론이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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