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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자사주 처분 기업 자율에 맡겨야

[최준선 칼럼] 자사주 처분 기업 자율에 맡겨야

기사승인 2023. 05. 3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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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금융정책당국이 자본시장법 혹은 그 하위법령(시행령)에 자기주식 소각 강제 조항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자사주란 회사가 발행한 자기 회사 주식을 회삿돈으로 되사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말하고, 상법에서는 '자기주식'이라 부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매출 100대 상장회사 중 86개사가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고(86%), 그 규모는 31조5747억원이며, 자사주 보유비중은 기발행 주식 대비 평균 4.96%라고 한다. 코스피 상장기업 797개사 중에서는 624개사(78.3%), 52조 2638억원 규모에, 기발행 주식 대비 평균 4.36%인 것으로 조사됐다. 각사가 제출한 '2022년 사업보고서'를 기준으로 낸 통계이기 때문에 매우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자사주를 일거에 강제소각하면 최대 52조2638억원 규모의 자산이 소멸되는 것이 된다. 자기주식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관해 학자 간 이견이 있다. '미발행주식설'은 자기주식을 취득하면 처음부터 주식을 발행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이론으로, 자기주식은 자본에서 차감해야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반면 '자산설'은 자기주식을 처분하는 미래에는 현금이 유입되므로 이를 자산으로 이해한다. 한국 대법원 판례는 전통적으로 '자산설'을 취해왔다. 

 대법원 판결문을 보면, "주식의 매도가 자산거래인 주식 양도에 해당하는지 또는 자본거래인 주식소각이나 자본 환급에 해당하는지는 법률행위 해석의 문제로서 거래의 내용과 당사자의 의사를 기초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도(대법원 2019.6.27. 선고, 2016두49525 판결), "상법 제459조 등의 규정에 의하면, 자본감소절차의 일환으로서 자기주식을 취득하여 소각하거나 회사합병으로 인하여 자기주식을 취득하여 처분하는 것은 자본의 증감에 관련된 거래로서 자본의 환급 또는 납입의 성질을 가지므로 자본거래로 봄이 상당하지만, 그 외의 자기주식의 취득과 처분은 순자산을 증감시키는 거래임에 틀림없고, 법인세법도 이를 손익거래에서 제외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므로, 그것은 과세처분의 대상이 되는 자산의 손익거래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여 '자산설'을 취했다(대법원 1992.9.8. 선고, 91누13670 판결). 이 판결 이래 자사주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기조는 크게 바뀐 게 없다.

 다만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IFRS)은 자기주식을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한국 회계학자 대부분과 법학자 일부는 자기주식을 미발행주식으로 간주한다. 미발행주식설을 취하면 자사주를 취득하는 즉시 소각해야 하고, 회사가 필요하면 언제든 새로 발행하면 된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주 회사법에서 미발행주식설에 따라 자사주를 취득하면 일단 소각하도록 규정한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주주가 주식을 보유한 비율에 따라 균등하게 신주를 배정하는 '주주의 신주인수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따라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신주를 발행하면 된다. 

 반면 한국은 주주의 신주인수권이 엄밀하게 보장되어 있고, 이를 위반하여 특정 주주에게 몰아주면 이는 '제3자 발행'이 되고 주주평등원칙 위반이 된다. 미발행주식설에 따르면 취득 즉시 소각해야 하므로 회사가 지금처럼 자사주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없다. 현재는 M&A 대가로 현금이 부족하면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그 대가로 지급할 수도 있고, 기업 인수·분할·합병 등 기업 구조조정에 아주 요긴하게 쓰인다. 타(他) 법인이나 외부와의 전략적 제휴 시에도 자사주를 맞교환할 수 있고, 교환사채 발행, 임직원의 임금·성과 보상, 이익 소각, 우리사주조합에의 출연 등에 활용되고 있다.

 기업들의 자사주 자발적 소각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2018년 이후 최근(2023년 5월 19일)까지 총 29건, 금액으로는 13조2430억원어치가 소각됐다. 이 중에서 2018년 삼성전자 7.1조원 소각, 2021년 SK텔레콤 1.9조원 소각 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금년도 소각 실적은 지난 19일까지 6건에 9667억원으로, 2022년 한 해 6건의 소각액 1조1286억원의 85.7%에 육박한다. 자본시장법이나 그 시행령을 개정하여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할 것이 확실시되면, 각 기업은 현재 보유 중인 자사주를 법규 개정 전에 서둘러 주식시장에 내다 팔 강력한 유인이 생긴다. 팔면 돈이 되지만 들고 있으면 자산가치가 제로(0)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이론상 최대 52조에 가까운 주식이 시장에 일거에 매물로 나올 수 있고,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진다. 소액주주의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현행 법률에 따른 것이니 불법도 아니고, 기업으로서는 재무건전성이 강화되므로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특히 법무부는 2011년 상법개정법안을 확정하면서 경영권 방어수단의 하나로 신주인수선택권(poison pill) 제도 도입규정을 마련했었다. 상법개정위원들의 논의 과정에서 자기주식 취득·처분을 통하면 충분히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포이즌 필 제도 도입을 무산시켰다. 이제 자사주 의무소각제도가 도입되면 한국 기업에게는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이 하나도 없게 된다. 혹자는 한국 헤지펀드들이 적대적 M&A를 시도한 사례가 없으며, 기껏해야 임원 선임을 요구하는 정도일 뿐이니 '호들갑 좀 그만 떨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적대적 M&A에 대한 방어수단'과 '경영권 간섭에 대한 방어수단'이 서로 다른 게 아니다. '적대국과 소규모 전투만 빈발할 뿐, 대규모 전쟁은 오랫동안 일어난 적 없으므로 전쟁을 대비할 필요는 없다'는 말과 같이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미국 대부분의 주 회사법과 일본 회사법 등은 차등의결권과 포이즌 필 등 경영권 방어수단을 제공한다.

 논리적으로 미발행주식설이 타당하고 또 그것이 회계기준과도 부합한다고 하더라도, 한국의 기업들에겐 포이즌 필도 없고, 주주평등원칙상 제3자 발행도 어렵다. 포이즌 필을 인정하고 제3자 발행 요건을 완화한 다음에 자사주 의무소각제도를 도입하더라도 늦지 않다. 특히 한국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인정하는 복수(차등)의결권제도마저도 인정되지 않고 있어 한국의 기업환경은 타국에 비해 불리한 점이 너무 많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자사주 강제소각 전에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그 전까지는 현재처럼 자사주 운용을 기업의 자율에 맡겨둬야 한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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