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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교룡산성 ‘군기고터’ 조선시대 아닌 통일신라말~고려초기 확인

남원, 교룡산성 ‘군기고터’ 조선시대 아닌 통일신라말~고려초기 확인

기사승인 2017. 12. 13.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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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말~고려초 추정 대형 건물지 확인
남원 교룡산성 군기고터 발굴지역 전경
남원 교룡산성 군기고터 발굴지역 전경. /제공=남원시
전북 남원시 산곡동에 위치한 남원 교룡산성 군기터가 발굴조사에서 그동안 알려진 조선시대 군기고터가 아닌 통일신라말~고려초의 군기고터로 새롭게 확인됐다.

13일 전북 남원시는 교룡산성의 정비복원을 위한 학술자료 확보를 위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재)전라문화유산연구원이 조사 중인 남원 교룡산성 군기고터 발굴조사를 실시했다.

시는 지난 11월 20일 학술자문회의를 거쳐 12월 7일 교룡산성 군기고터 현지보고회를 발굴조사 현장에서 실시하기도 했다.

남원소재 교룡산성은 둘레 3120m에 이르고 산의 정상 높이는 해발 518m이고, 정상에서 능선을 감싸 안은 포곡식 산성으로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원 교룡산성 군기고터 축대
전북 남원 교룡산성 군기고터 발굴된 축대 전경. /제공=남원시
교룡산성은 문헌에 조선시대 산성으로 기록되어 있어 그동안 교룡산성 및 그와 관련된 부속건물지 등은 조선시대와 결부시켜왔다. 현재는 교룡산성을 제외한 건물지 등은 오래전 없어지고 그 터만 남아 있어 정확한 위치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군기고터는 교룡산성과 관련하여 최근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그 위치가 구전되어온 건물지로 지표에서 철제 화살이 수습되기도 했다 그동안 학계 연구자들은 그동안 이곳을 조선시대 군기고터로 추정했으나 발굴조사 결과 조선시대와는 관련 없는 통일신라말~고려초기의 대규모 건물지로 확인됐다.

건물지는 크게 3차례에 걸쳐서 중창되었으며, 이중 1차 건물지가 가장 잘 남아 있다. 건물지의 규모는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규모는 장축 1420cm, 단축 850cm, 주간 거리는 200cm 내외이며 정면의 축대를 기준으로 동·서쪽 기단이 명확하게 확인됐다.

축대는 돌과 흙을 이용해 상당한 넓이와 두께로 조성하였는데 결과적으로 건물지의 위용을 드러내는데 매우 효과적으로 기능한 것으로 생각된다.

2차 건물지는 기단장축방향의 북쪽 초석 7개만 남아 있는 상태로 1차 건물지 동·서 기단을 그대로 사용했고, 북쪽 기단이 남쪽으로 전진하면서 새롭게 조성된 건물지로, 1차 건물지 폐기 후 기와를 두껍게 깔아 기단토를 조성한 후 그 위에 마련하였다. 1차건물지의 사용시기와 2차 건물지의 사용시기는 거의 동일한 시기로 보이며, 3차 건물지는 추정 초석만 일부 확인될 뿐 본래 구조나 규모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없었다.

발견된 유물은 평기와류가 대부분인데 통일신라시대 문양으로 추정되는 무늬가 없는 무문과 선 모양의 무늬가 새겨진 선문계 기와, 그리고 격자문이 새겨진 격자문계 무늬가 다수를 이룬다. 특히 생선뼈무늬가 표현된 어골문계 기와가 소량 출토되었는데 이는 고려시대의 문양으로 어골문의 초기형태로 추정되어 그 의미가 크다.

건물지가 조성된 시기는 출토유물로 보아 통일신라말~고려 초로 추정되나 사용시기가 매우 한정적이라고 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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