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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영의 정치&이슈]‘2년전 대세는 필패?’ 과거 대선 어땠길래?

[송기영의 정치&이슈]‘2년전 대세는 필패?’ 과거 대선 어땠길래?

기사승인 2011. 01. 05.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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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대 대선 2년전 여론조사 분석해보니 대세=필패 확인
   
[아시아투데이=송기영 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세론을 두고 정치권의 해석은 늘 분분하다. 부정론자들은 "대선 2~3년전 여론조사에서 1위를 지켰던 사람은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고 지적한다. '대세론은 곧 필패'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 과거 대통령 선거에서 대세론은 늘 무너졌는가. 15대 대선부터 살펴보자.

15대 대선을 2년여 앞둔 1995년 12월 한국갤럽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를 보면 김대중(13.3%)·박찬종(10.3%)·김종필(3.4%)·이회창(2.0%) 순이었다. 그러나 이후 대세론의 주인공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였다.

이 대표는 94년 김영삼 정부에서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이후 김영상 전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하며 갈등을 빚다 4개월만에 해임되면서 '대쪽 총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로 인해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이 급등했고 대선을 2년여 앞둔 시점에 한나라당에 입당, 대선 후보직을 차지하며 지지율 선두로 나섰다.

   
한때는 이 대표의 지지율 60%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두 아들의 병역문제가 불거지면서 급격하게 지지율이 하락했고 결국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16대 대선을 2년 앞둔 2000년 12월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이회창(20.7%)·이인제(18.3%)·노무현(5.8%)·박근혜(4.6%) 등의 순이었다. 이 당시에도 이회창 대표가 대세론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당시 여론조사에는 이 대표와 나머지 후보간의 1대 1 양자 대결 구도를 가상해 조사한 것도 있었다. 이 조사에서 이 대표는 어떤 후보와의 양자 대결 구도에서도 40% 이상의 지지를 얻으며 승리하는 것으로 나왔다.

당시 민주당에서는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당시 3위에 그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3월 민주당 대선후보 광주 경선에서 승리하며 '이인제 대세론'을 침몰시키고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대선 직전 정몽준 후보와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며 이회창 대표를 역전했다. 결과적으로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던 이회창·이인제는 모두 대권에 실패하고 말았다.

17대 대선도 2년전 대세론의 주인공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했다. 17대 대선 2년전인 2005년 고건 전 총리는 꾸준히 선두자리를 유지하며 대세론을 굳혀갔다. 여론조사마다 다소 차이가 있으나 2005년 11월 '리서치플러스'의 조사에 따르면 고건(20.7%)·이명박(17.7%)·박근혜(16.2%) 등의 순이었다.

이후 이들 '빅3'의 순위는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했으나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기점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선두로 치고 나갔다. 이후 지지율 바닥을 치던 고 전 총리는 급기야 2007년 1월 17대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5~17대 대선만 놓고 보면 대세론은 곧 필패하는 공식이 성립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장기간 대세론을 이어가는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참신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박 전 대표의 대세론과 과거 15~17대 대선과의 차이점은 분명 있다. 현재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을 평균 30%대를 유지하고 있다. 한자릿수 지지율을 유지하는 다른 후보와는 20%포인트 이상 앞선 결과다. 반면 과거 대세론의 주인공들은 2위와 4~7%정도의 격차를 보였다. 또 박 전 대표가 대세론에 안주하지 않고 지난해 12월 대선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발족하는 등 조기 대권행보에 나섰다는 점도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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