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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그 절에서 화엄의 세계를 만나다

[여행]그 절에서 화엄의 세계를 만나다

기사승인 2009. 10. 28.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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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 보자-의성 고운사
계곡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누각을 올려 자연친화적 공간을 연출한 가운루. 고운사 보살님이 문을 열고 나와 내방객에게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만나면 그저 좋은 사람이 있다.

해맑은 미소가 그렇고, 단아한 모습이 마치 한 송이 연꽃을 닮았다면 무조건이다.

치장하거나 내세우지 않으면서 보석 같은 여행지를 만나도 그저 좋다.

경북 의성이 그런 곳이다.

유교.불교 문화권인 영주와 안동에 치어 드러내놓고 자랑하진 않지만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녹찻잎 우러나듯 담백하다.

그중 백미는 조계종 16교구 본사인 고운사다.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어 있어 오히려 절같은 냄새가 풀풀 난다.

만나면 그저 좋은 사람이 손짓하는 화엄세계가 그곳에 있다.

                              /경북 의성=글.사진 양승진 기자 ysyang@asiatoday.co.kr


비포장 도로여서 더 정감이 가는 고운사 천년숲길에 가을이 내려 앉았다.   
◇나를 버리고 떠나는 700m 천년숲길

등운산(騰雲山) 고운사(孤雲寺)를 찾으면 헝클어진 나를 잠시 추스르고 가라고 자연이 권한다.

이제부터는 불가의 세계로 들어서니 속세의 잡념을 씻으라는 듯 일주문에서 절집까지 천년숲길이 700m나 이어진다.

단지 이 길이 유명한 것은 다름 아닌 비포장이라는 데 있다.

대한민국 조계종 교구본사 중 진입로가 포장 안 된 곳은 이곳 밖에 없어 요즘엔 정말 보기 드문 풍광이다.

인위적으로 편하게 살려고 하지 않고 그저 자연 그대로를 고집하는 이들이 절집을 지켜서일까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는 절의 흥망성쇠를 본 탓인지 이리저리 구불거리고 단풍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이 곳곳에서 내방객을 맞는다.

가로수처럼 줄을 맞춰 늘어선 나무 하나 없이 제멋대로 크고 싶은 대로 세월을 쌓아서인지 더 정감이 간다.

고운사는 우리나라 절집 중 이런데도 있구나 하고 놀랄 일이 제법 있다.

마을에서 일주문까지 가는 길에 그 흔한 식당이 한 곳도 없다.

대부분의 절집 앞이면 지지고 볶는 일이 다반사지만 이곳은 그런 식당이 없다.

물론 매점도 없다.

108염주나 서적, 테이프, 차, 향을 파는 매점이 절 안팎에 한 군데도 없다.

뭘 간직하기 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고 새기라는 의미에서다.

그래서 고운사 일주문에서 절집 안채까지 한 바퀴 돌아보면 법계(法界)를 거니는 듯 스스로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으로 도선대사가 영남 최고의 길지로 칭한 고운사.
◇자연친화 그리고 더불어 사는 법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인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조계종 16교구 본사다.

안동, 영주, 봉화, 영양에 산재해 있는 60여개 사찰을 관장하는 고운사는 많을 때는 366칸의 건물에 200여명의 대중이 상주했을 만큼 대찰이었다.

도선대사가 영남 최고의 길지로 칭한 고운사는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이다.

원래는 고운사(高雲寺)로 칭했지만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해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 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고운(孤雲)을 빌어 고운사(孤雲寺)로 바꿨다.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영험성지다.

옛 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의 원만 자비한 풍모와 명부십대왕의 상호,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한다.

절집 안에 가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가운루다.

절집 이름을 바꿀 만큼 자연친화적인 건물로 계곡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누각을 얹었는데 마치 수상가옥을 연상케 한다.

길이 16m, 높이 13m에 달하는 세 쌍의 기둥이 계곡 바닥으로부터 루(樓)를 떠받치고 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연수전(延壽殿)으로 불교와 유교가 한 울타리 안에 놓여 있다.

조선 영조 20년(1774)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御牒)을 봉안하기 위해 세운 건물로 조선시대 불교를 억제하던 것에 비춰보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연수전은 만세문 현판이 붙은 솟을 대문에 사방 담을 쌓은 가구식 기단에 겹쳐 마형식의 팔작지붕으로 사찰의 여타 전각과는 확연히 다른 풍모다.

특히 이곳에 칠해진 단청은 색이 좀 바랬지만 태극문양 등 좀처럼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아 둘러볼 만하다.

고운사 참선체험장에서 내다 본 풍광. 구불구불 담 밖으로 가을이 확연하다.
◇화엄세계가 멀리 있지 않다

살아생전 스님의 몸에서 사리 64과가 나왔다면 믿을까.

보통 스님이 입적하면 다비식을 치루고 나서 사리를 수습하는 게 보통이지만 수월선사는 고운사에서 10년 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천수대비주로 신통을 얻어 살아생전 64과의 사리가 나왔다.

그래서 고운사는 수행 절로서 아직도 그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고운사는 새벽녘에 찾으면 좋다.

나무와 바람과 흙길 모두가 반긴다.

그들은 나와 더불어 세상을 덧없이 살아가자고 손 내미는 도반이 된다.

천년숲길 한 가운데 서서 의상 대사나 고운 최치원 선생과 대화를 나눠도 좋다.

세상도 열리고 나도 조금씩 열리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곧 화엄세계라는 걸 말이다.

조선시대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보관하기 위해 세운 연수전. 유교와 불교가 한 울타리에 있어 이채를 띤다.
◇여행메모
△템플스테이= 고운사는 1박2일, 2박3일 일정으로 연중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사찰음식체험(매월 둘째주 토.일)과 청국장체험(10월-3월, 매월 넷째주 토.일)이 실시된다. 참가비는 5만원. 고운사(054-833-6933)

고운사 천년숲길을 따라 흐르는 내에 가을하늘과 낙엽이 담겼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남안동IC로 빠져 5번국도로 나와 육교 밑 굴다리에서 우회전하면 8km 정도에 있다. 버스는 안동터미널에서 의성 행을 타고 일직에서 하차하면 하루 4번 시내버스가 다닌다. 택시 15분. 기차는 안동역이나 동대구역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된다.

△둘러볼 곳= 의성의 유일한 국보인 탑리오층석탑이 있는 금성면에는 산운마을과 금성산고분군이 유명하고, 점곡면에 가면 사촌마을과 사촌가로숲길이 이름나 있다. 여름철에 가면 가음면의 빙계계곡과 풍혈 등이 좋고, 봄에는 사곡면 산수유마을에서 축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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