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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달새 454억 낚은 ‘로맨스 스캠’… 피싱 범죄 예측시스템 만든다

5달새 454억 낚은 ‘로맨스 스캠’… 피싱 범죄 예측시스템 만든다

기사승인 2024. 08. 05.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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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교묘해지는 '그놈 목소리'
이성에 호감 쌓은후 금품 갈취하는 수법
한국계 혼혈 등 사칭… 피해 규모 커져
국수본, 카이스트와 피싱 탐지기술 연구
내년 실전 투입… 수사 인력 절감 기대
스마트폰 간편제보·긴급차단기능 개발

"지금 이렇게 연락하는 게 처음이거든. A씨 성격이 좋아서 금방 친구가 된 것 같아."


서울에 사는 A씨(23·여)는 지난 4월 인스타그램의 다이렉트 메시지(DM)를 통해 일면식 없는 남성 B씨의 연락을 받게 됐다. B씨는 A씨가 올린 게시물을 보고 마음에 들어 연락했다고 했다. A씨는 B씨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무시했으나 수일간 이어진 그의 호감 표시에 호기심이 생겨 연락을 시작했다.


12년 만에 포르투갈에서 귀국했다는 B씨는 A씨에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이야기하며 A씨의 경계심을 풀었고, 연락을 지속할수록 A씨의 마음 한편에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라는 기대감까지 피어 올랐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지 3일째 되던 날 B씨는 포르투갈에서 외롭고 심심해 시작한 한국 채팅사이트에 충전한 3000만원가량의 포인트를 날리게 됐다며 포인트 환전을 요구했다. A씨는 "남성회원은 선물만 보내줄 수 있고, 여성 회원만 환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래" "환전하고 500만원은 사례금으로 가지고, 나머지는 계좌 개설하면 그쪽으로 보내주는 게 어때?"라는 B씨 말에 이상함을 감지했고, 곧바로 인터넷에 해당 수법을 검색해 환전을 핑계로 금전을 갈취하는 수법인 '로맨스 스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즉시 B씨와 연락을 끊었고, 며칠간 호감을 가지고 연락하던 상대가 사기범이라는 사실에 한동안 허탈감과 씁쓸함을 느껴야만 했다.


이성에게 접근해 돈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 범죄의 시나리오가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그간 한국계 혼혈 가족 또는 한국계 미군 여성을 사칭한 범죄 시나리오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가세로 더욱 교묘해져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5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따르면 올해 2월부터 통계 집계를 시작한 '로맨스 스캠' 범죄는 지난 6월까지 5개월간 총 628건 발생했다. 이 기간 피해 규모는 총 454억원으로 파악됐다.


국수본에 보고된 로맨스 스캠 범죄는 과거와 달리 체계적이고 정교한 시나리오로 수법이 진화하고 있다. 초기엔 주로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범죄 조직이 한국계 혼혈 가족 등으로 둔갑한 뒤 병원 치료비가 부족하다는 식의 수법으로 금품을 갈취했지만, 최근엔 캄보디아 등지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피싱 수법을 모방한 로맨스 스캠 범죄가 경찰에 포착됐다.


실제로 경찰은 2022년 11월부터 1년간 의사·기업가, 시리아에 파견된 미군을 사칭해 출장 도중 사고가 났다거나 밀린 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거짓말로 30명의 피해자로부터 총 19억원을 가로챈 나이지리아 국적 해외총책 A씨(39) 등 13명을 검거했다. 이들은 SNS로 장기간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신뢰와 유대감을 쌓은 뒤 1명당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3억원 이상 금액을 갈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피해자와 호감을 쌓은 후 금품을 갈취하는 진화된 '로맨스 스캠'은 최근 들어 환전하는 데 필요한 돈을 입금해 주면 환전액 가운데 일부 금액을 주겠다고 속이는 수법으로 바뀌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이성에게 호감을 얻거나 돈독한 관계를 만든 후 심리적으로 지배해 금품을 갈취하는 그루밍 수법으로 피해자들의 심리 상태를 철저히 이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피해자는 금품을 갈취당하는 피해를 입었음에도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국수본은 이같이 로맨스 스캠을 포함해 진화하는 피싱 범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민간 기업 또는 국내 대학과 함께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우선 과학기술 개발의 요람으로 불리는 카이스트(KAIST)와 오는 2025년 실전 투입을 목표로 보이스피싱 탐지 및 추적기술을 개발 중이다.


통합신고대응센터 관련
간편제보, 긴급차단서비스 체계도. /경찰청

치안현장에 접목할 기술 가운데 하나인 '다계층 방어 시스템'은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의 행동을 미리 예측해 각각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 국수본은 해당 기술이 실전 배치되면 연 7000억원 이상의 피해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범죄 수사를 위한 인력·시간·비용도 크게 절감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국수본은 오는 2028년까지 4개년에 걸쳐 피싱 범죄를 사전 예방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 분석·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국수본은 올 하반기를 목표로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를 중심으로 피싱을 시도하는 전화나 문자를 스마트폰 화면상의 버튼 하나로 제보할 수 있는 '피싱 간편제보', '긴급차단서비스(서킷브레이커)' 등을 개발해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통합대응시스템에 인공지능(AI)을 도입해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시스템 고도화 작업도 병행한다.


박상현 경찰청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센터 계장은 "통합대응시스템이 완성되면 피싱 범죄 시도에 대한 실시간 대응으로 피해를 크게 줄이는 것은 물론, 빅데이터 분석·공유를 통해 실효적인 피싱 대응 정책을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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