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M&A 전략 표류 '난맥상'
재건하면 '책임문제' 논란 있지만
JY 등기이사 선임으로 대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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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한 그룹을 경영하기 위해선 '컨트롤타워'가 필수적이다. 구조조정본부, 미래전략실로 이어지는 조직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삼성엔 컨트롤타워가 없다. TF(태스크포스) 형태의 느슨한 조직이 3개 있을 뿐이다. 컨트롤타워 없는 지난 9년의 시간은 묘하게도 삼성의 위기가 증폭되는 기간과 겹친다. 위기 돌파를 위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다움'을 제시하면서 다시금 컨트롤타워 재건 가능성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은 좌고우면 중이다.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든든한 보루'라는 평가를 받는 동시에 철저한 감시와 질시의 대상인 태생적 한계 탓이다.
재계에선 "컨트롤타워 재건은 삼성 경영의 책임과 권한의 문제와 직결된다"며 "그럼에도 좌고우면을 하기엔 지금 삼성이 처한 위기가 심상찮다"고 지적했다.
◇컨트롤타워 없는 9년
고(姑) 이건희 회장 시절 구조조정본부와 미래전략실의 파워는 막강했다. 인사, 재무, 감사, 기획 등 모든 기능이 컨트롤타워에 집중됐다. 수많은 계열사와 다양한 사업의 현황과 위기, 미래를 파악해 최적의 방향성을 제시했던 게 이 조직이다. 이건희 시대 삼성의 초고속 성장은 컨트롤타워의 순기능을 보여주는 결과물이었다. 삼성을 벤치마킹해 다른 대기업이 비슷한 조직을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 삼성은 컨트롤타워를 해체해야 했다. 국정농단 사건 탓이다. 이후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로 전환했다. 그룹 내 계열사간 소통을 위해 최소한의 통로만 만들었을 뿐이다. 그 통로는 사업지원TF(전자 계열), EPC경쟁력강화TF(건설계열), 금융경쟁력제고TF(금융계열)였다. TF는 표면상 어떤 권한도 갖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지원 기능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삼성의 장점인 '사업재편'이 전면 중단됐다. 과거 삼성은 계열사들의 사업이 처한 한계와 대응방안을 큰 틀에서 파악, 사업재편을 여러차례 해왔다. 삼성SDI의 패널사업, 삼성전자의 태양광 사업 등이 이런 과정을 통해 정리됐다. 이런 사업재편은 2016년 삼성전자 프린팅사업부를 HP에 매각하는 결정을 내린 걸 마지막으로 사실상 중단됐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된다고 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당장 수익을 내는 사업을 정리하는 결단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라며 "컨트롤타워가 했던 그 역할이 중단된 9년간 삼성의 위기가 곪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고 귀띔했다.
◇"좌고우면할 여유가 없다"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한 위기 징후는 삼성 경영진도 진작부터 파악했다. 이재용 회장도 분기에 한번씩 비공개로 계열사 사장단과 만나서 사업 현황을 점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께에는 보스턴컨설팅(BCG)에 자율경영을 위한 시스템 구축 관련 컨설팅도 맡겼다. 하지만 아직까지 어떠한 해답도 못찾은 상황이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옛 미래전략실에 대한 외부 비판을 수용하면서,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설득해내기가 쉽지 않아서다.
그러는 사이 위기의 골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17일 이재용 회장이 지적한 AI 시대 대응 실패도 그 중의 하나다. 삼성은 2015년 세계 최초로 2세대 HBM을 양산하는 등 한때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지만 의사 결정 과정과 조직 문화의 문제점이 장기간 누적됐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에 삼성은 HBM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었고 경쟁사에 뒤처지고 고객사를 잃는 등의 위기를 맞이했다.
삼성 안팎에선 더이상 컨트롤타워 재건과 관련해 좌고우면할 여유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50만명의 임직원을 둔 초대형 그룹의 위기를 진단하고, 미래 방향성을 따져볼 '두뇌'를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한에 따른 책임 문제는 이재용 회장의 등기이사 선임을 앞당겨서 사후 대응할 필요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