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르포] 북한 피겨요정의 힘겨웠던 일본 방문…공항서만 5시간 발묶여

[르포] 북한 피겨요정의 힘겨웠던 일본 방문…공항서만 5시간 발묶여

기사승인 2019. 03. 24. 13:1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조총련계 재일동포들, 17일 나리타공항에 환영 마중
KakaoTalk_20190324_102353949
북한 이철운 선수단장(가운데 붉은 유니폼)을 비롯해 북한 피겨 대표인 염대옥, 김주식 선수가 일본에서 열리는 ‘2019 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참가를 위해 나리타 공항을 통해 지난 17일 입국했다.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북한 국기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사진=엄수아 도쿄 특파원
“자네 왔어”, “오래간만입니다”

지난 17일 정오.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말쑥한 정장 차림의 남성들이 한국말로 인사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소속 재일동포들의 말투였다. 이들은 북한에서 출발한 운동선수 2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 착륙이 한참 남았지만 20여명이 입국장 앞에서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눴다. 입국장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있지만 역시 같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 일본 공안경찰들의 모습도 보였다.

오후 2시.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은 중국발 비행기가 도착한지 한 시간이 넘자 입국장 길목에 나란히 서서 북한 국기를 들고 환영 채비를 갖췄다. 대부분 50대를 넘긴 중년 남성들이었지만 이 가운데 10여명은 조총련계인 조선대학교에 재학중이거나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들이었다. 재일동포 사회는 크게 한국 정부와 가까운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북한 정부와 가까운 조총련으로 나뉜다. 해당 비행기를 탄 것으로 보이는 중국 관광객들이 하나 둘 나오면서 입국장이 북적였다. 기다리던 사람들과 도착한 이들로 입국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비행기가 도착할때마다 이 광경은 반복됐다. 해당 비행기가 도착한지 5시간이 다 되어갔지만 북한 운동선수 2명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북한 운동선수 2명이란 다름 아닌 피겨 선수 염대옥과 김주식 선수. 두 선수는 지난해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 페어 쇼트프로그램에서 69.40점, 프리스케이팅에선 124.23점을 받았다. 이들이 받은 점수는 북한 피겨 최고 성적. 지난해 1월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린 201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에서는 3위에 오르며 동메달을 거머쥐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150cm의 작은 키에 다부진 염 선수의 싱긋 웃는 모습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두 선수는 20일부터 24일까지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201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왔다. 일본 정부는 원칙적으로 북한 국적의 사람은 입국을 허용하지 않지만 경기 참가 등 몇 가지 경우에 한해 입국을 허용한다.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을 앞둔데다 최근 북·미 대화가 잇따르자 대북제재 일변도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평이 나온다. 아베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6일 북한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내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야 할 것”이라며 북·일 정상회담 가능성도 내비췄다.

그러나 두 선수는 일본의 첫 관문인 나리타 공항에서부터 각종 서류와 짐 검사를 받아야 했다. 가져온 감기 약이 사전 신청 목록에 없다는 이유로 담당자가 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그나마 일본 대회 관계자가 다른 일정으로 떠나버려 남은 일행은 더욱 지칠 수밖에 없었다. 조총련 관계자는 “고의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며 불쾌해 했지만 오후 6시께 두 선수가 환한 얼굴로 나오자 안도한 표정이었다.

아베 정권 들어 북·일 관계는 냉기가 감돌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구글에 ‘도쿄, 범죄자’라고 검색하면 조총련 본부가 나올 정도. 일본에 살고 있는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의 일상이 더욱 팍팍해진 것은 물론이다. 북·일 관계가 경색되면 피해를 보는 이들 역시 일본에 살고 있는 동포들. 일본 극우의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에서 온 두 선수가 공항을 나서기까지 5시간. 북·일 관계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듯한 장면이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