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 심고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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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여사는 이날 윤이상의 묘소를 찾아 “선생이 살아생전 일본에서 타신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보시고 정작 고향땅을 못 밟으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성악을 전공한 김 여사는 “선생의 음악을 잘 알고 있다”며 “음 파괴가 낯설긴 하지만 작곡했던 선배들은 물론이고 관심이 많았다”고도 소개했다.
윤이상은 한국보다 유럽에서 더 제대로 알려진 세계적인 음악가다.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한국에서 수감됐을 때는 20세기 최고의 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구명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당시 서독 정부는 불법적으로 납치돼 수감된 윤이상을 석방하지 않으면 한국 정부에 차관을 중지하겠다며 나서기도 했다. 196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된 후 독일로 돌아간 윤이상은 이후에도 한국 땅을 밟지 못했다. 최근에는 윤이상을 기념하기 위한 재단과 단체들이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돼 갖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진다.
김 여사는 윤이상의 고향인 통영에서 가져온 동백나무를 그의 무덤가에 심었다. 김 여사는 “식물은 검역통관이 쉽지 않아 통영에서 가져오느라 애를 많이 썼다”며 “항상 통영을 그리워한 선생의 마음이 풀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여사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번번이 귀국이 무산된 윤이상이 조국으로부터는 제대로 된 사과와 명예회복을 받지 못한 데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그의 묘지에는 베를린시가 부여한 명예시민 자격만 남아있다. 김 여사는 “국가에서 해드려야 하는데 너무 섭섭해 하실 것 같다”며 관계자들에게 방안 마련을 당부했다.
이날 묘소 방문에 함께 한 발터-볼프강 슈파러 국제윤이상협회장, 박영희 전 브레멘 음대 교수, 피아니스 홀가 그로숍 등 윤이상의 제자들은 김 여사에게 베를린에 남아있는 윤이상 자택을 ‘윤이상 하우스’로 만들어 기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윤이상평화재단은 2008년 윤이상의 생가를 매입하고 기념관 건립을 추진했지만 현재는 지원 중단과 예산 부족으로 기념관 추진이 중단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