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근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원장 |
길거리 응원 물결을 보며 문득 작년에 병원을 다녀간 A씨(남, 40대)가 떠올랐다. 당시 A씨는 공사 현장에서 벽돌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점심식사 때나 쉬는 시간에도 항상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는다고 했는데, 그 때문인지 그 동안 조금씩 기미를 보이던 치핵이 악화됐다며 병원을 찾아왔다.
실제로 A씨처럼 평소 치질 증상이 있는 사람은 바닥에 앉을 때 자리를 잘 가려야 한다. 차갑고 습기가 찬 곳에 오래 앉아있으면 항문 주위의 혈관이 수축돼 혈액순환이 나빠지면서 치질이 악화될 수 있다.
치질은 크게 항문벽에 혹이 생기는 치핵, 항문이 찢어지는 치열, 항문 부위에 고름이 잡히는 치루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전체 치질의 60~70%를 차지하는 치핵은 항문 부위가 차가운 곳에 노출됐을 때 증상이 더욱 심해지며, 특히 많이 발생하는 것이 급성 혈전성 치핵이다.
급성 혈전성 치핵이란 환자 본인도 모를 정도로 작았던 항문 주변의 치핵이 밤톨만한 크기로 굳어지는 것을 말한다. 일반 치핵은 피가 비교적 잘 순환되어 만져보면 부드러운 반면, 급성 혈전성 치핵은 혈관에 피가 엉기면서 혈전을 만들어 딱딱하다. 급성 혈전성 치핵이 생기면 평소 대변을 볼 때 밖으로 나왔다가 저절로 들어가던 치핵이 크게 부어서 밀어 넣어도 잘 들어가지 않고 통증도 심하게 된다.
급성 혈전성 치핵의 원인은 항문이 차가운 곳에 노출돼 모세혈관이 수축되면서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 또 피로와 스트레스, 음주, 수면부족, 무리한 배변 등도 급성 혈전성 치핵의 발병을 부추길 수 있다. 이와 함께 술도 치질 악화의 또 다른 주범이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술을 마시면 말초혈관이 확장되고 혈류량이 증가해 치핵 부위에서 출혈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평소 치질이 있다면 가급적 음주를 삼가고, 부득이하게 술을 마실 경우 소주 한 잔을 넘지 않는 것이 좋다.
월드컵 16강 진출이 눈 앞에 다가오면서 길거리 응원도 열기를 더할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야외에서 3시간 이상 차가운 바닥이나 습한 곳에 앉아 있게 된다면, 냉기와 습기를 차단하고 온기를 보존해 주는 깔개를 사용하고, 귀가 후에는 5~10분 정도 온욕이나 좌욕을 하는 것이 좋다. 죄욕은 청결 유지뿐만 아니라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주어 치질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동근 한솔병원 대장항문외과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