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일 한국정신종양학회 제10회 추계학술대회 및 연수교육에서 고윤석 서울아산병원 내과 교수는 '한국의 말기의료결정 관련 제도 변화 및 의사조력자살의 개관' 발표에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의 취지는 말기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고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사망이 예견되는 상황에서의 환자의 자율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며 "감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해결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생애말기돌봄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 개입 범위를 확대해야 하고, 법적 대리인의 자격을 확대해야 한다"며 "의료계는 의사조력자살에 대한 준비가 돼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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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의사조력자살 입법화를 통해 환자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증진하려고 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고 방향자체도 완전히 틀렸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는 자살할 권리는 포함되지 않는다"며 "존엄하게 죽을 권리는 생명·신체에 대한 불가침권에서 도출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따라 연명의료를 거부함으로써 그 반사효과로서 죽을 권리를 말하는 것이지 법적 권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자신의 생명을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 타인이 자신의 생명을 처분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권리는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환자는 소극적 자살권을 가질 뿐"이라면서 "의사조력자살은 직접적인 자살할 권리, 즉 자신의 생명에 대한 처분권을 인정해야 의사조력자살이 허용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의사조력자살을 조력존엄사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우리의료현장은 의사조력자살을 수용할 준비가 부족하다는데 공감했다. 문재영 충남대병원 내과 교수는 "의사 70%가 환자가 사망할 때마다 힘들어하고 간호사들은 번아웃에 빠진다"면서 "환자 죽음에 일조하는 조력자살이 의료인 정체성까지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 교수는 "PAS 개정안은 다양한 법적·사회적·의학적·윤리적 문제를 내포해 오히려 현장의 연명의료 유보중단 의사결정에 혼란을 초래하고 삶과 죽음, 생명의 의미를 왜곡할 위험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 교수는 "의학적으로 말기와 임종기를 특정 시점으로 구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며 "담당의료인은 환자 및 환자 가족과 조기에 사전돌봄계획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해 임종 돌봄을 계획하고 연명의료 상황에서 환자의 평소 의사가 반영되는 최선의 이익을 계획할 수 있다. 생명윤리원칙을 실현하면서 회복하지 못하고 임종하는 환자들의 존엄성 또한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