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2200여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4분기 제조업체 경기전망지수’에 따르면 4분기 경기전망지수(BSI)가 3분기보다 12포인트 하락한 75로 집계됐다. 내수부진과 세계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경기가 더 침체될 것이란 게 수출·내수기업들의 판단이다. BSI 수치는 100을 기준으로 이보다 낮으면 악화, 높으면 개선을 의미한다.
이날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제조업 경기조사’ 역시 3분기 제조업의 시황과 매출의 BSI가 모두 100을 하회하며 전분기 대비 하락 전환했고 4분기 전망 역시 부진이 점쳐졌다. 산업별로는 유일하게 100을 넘어선 반도체를 제외하곤 전 산업이 침체 분위기다.
제조업 추락을 나타내는 지표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우리나라 설비투자와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6개월 연속 전년대비 감소했다. 이는 설비투자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생산능력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 있는 장기 부진이다.
대한상의 조사 결과 국내기업 3곳 중 2곳은 올해 실적 목표치를 채울 수 없다고 응답했고 그 이유로 ‘내수시장 둔화’와 ‘고용환경 변화’를 많이 꼽았다. 또 ‘미·중 무역분쟁 등 보호무역주의’ ‘환율 변동성’ ‘기업 관련 정부규제’ ‘유가 상승’이 뒤를 이었다. 응답기업의 72.5%는 최근 우리 경제가 ‘중장기 하향세에 있다’고 인식했고 이유로는 ‘주력산업 침체 장기화’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실업률이 13년만에 최대치를 찍는 상황에서 우리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 부진이 갖는 의미를 돌아봐야 한다는 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 폐쇄 여파가 사회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다는 의미로, 제조업이 살아아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경제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한국경제 성장과 수출을 홀로 끌어 온 반도체 산업이 투자 마무리 국면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금이 우리 산업 경쟁력을 재점검하고 규제를 풀어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마지막 기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부 역시 제조업 경쟁력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2일 경남 통영 폐조선소 재생사업 현장을 방문해 “조선산업이 어려워도 우리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면서 “산업부를 중심으로 산업구조 고도화 작업을 진행해 연내 발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우려가 가시지 않는 건 그동안 정부가 당장 통계치 개선에만 급급해 땜질식 처방에 그쳐 온 탓이다.
조성훈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단기적 처방보다 이럴 때야말로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기업의 자유로운 사업도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대대적으로 혁신하는 등의 구조적 변화를 하루빨리 시작할 때”라고 조언했다. 김문태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도 “1~9월 전체 수출은 전년 대비 4.7%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1.7% 감소하는 등 경제·산업 전반의 성장 역량이 약화돼 있다”면서 “주력산업의 경쟁력 강화, 규제혁파를 통한 신산업 육성 등 중장기적 추세를 반전시킬 만한 근본적 처방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등의 연구개발에만 매몰돼 있는 신산업 육성책을 보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신성장동력, 어떻게 찾을 것인가?’ 보고서를 통해 “주력 산업 기반이 취약한 경우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면서 “결국 신산업은 기초 소재·기계·IT·자동차 등 현재 주력 산업들을 근간으로 파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주력산업 경쟁력 제고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 선임연구원은 또 “기술 관점에서만 연구개발을 추진한다면 투자가 집중되지 못하고, 너무 많은 연구 분야에 재원이 분배되면서 그 성과의 한계가 표출될 것”이라며 “시장과 수요 관점에서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는 산업에 재원이 집중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