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사면 기준 개선해 사회적 논란 최소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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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법조계 안팎에선 사면 기준을 대통령의 재량에만 맡기는 것은 오남용의 여지가 남아있어 제도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사면의 기준과 원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면에서 ‘정치인 배제, 경제인 최소화’라는 엄격한 원칙을 적용했음에도 일각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과거 정권 정치적 사면 논란…박 대통령 고심한 흔적 엿보여”
역대 정권에서 사면은 끊임없는 정치적 논란을 낳았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 사람 챙기기 같은 정략적 수단으로 이용돼 부정적 시각이 컸던 탓이다.
노무현 정권은 정치적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정치적 동료인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을,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말 최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여행 회장 등을 대거 사면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김창남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교수는 “과거 정권에서 사면은 ‘정치적 사면’이나 ‘보은 사면’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쉬운 측면이 있지만 박 대통령의 이번 사면은 과거 정권에 비해 굉장히 고심한 측면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잦은 사면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면권이 남용되면 ‘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요구되는 대기업 총수나 고위공직자,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에게 면죄부를 줘 법치주의를 훼손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1980년대 이후 역대 정부의 사면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14회로 가장 많은 사면권을 행사했다. 이어 김영삼 정부(9회), 노무현 정부(8회), 이명박 정부(7회), 노태우·김대중 정부(6회)에서 사면을 실시했다.
그러나 입법부나 사법부의 견제 장치는 거의 없다. 대상자 선정도 현행법상 사면심사위원회를 거치게 돼 있으나 위원장인 법무부 장관이 위원을 임명 혹은 위촉하게 돼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 “사면법 개정으로 절차·요건 정리해야”
한국갤럽의 7월 넷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기업인 특별사면에 반대하는 의견이 54%였고 찬성한다는 응답은 35%에 그쳤다. 대통령의 재량권에 기댄 사면은 사법부 불신을 조장하는 원인 중 하나인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란을 재연할 수 있다.
한상훈 대한변협 대변인은 “대기업 총수만 특사 형식으로 사면시키는 것은 여전히 법치주의에 위반된다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사면법을 개정을 통해 사면의 절차와 요건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19대 국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사면법 개정안은 11건에 달한다. 법안 대다수가 특별사면을 국회의 동의를 구하도록 하고 대통령 측근이나 재벌 총수 등에 대한 특사는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사면권을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로는 특사 대상자를 형 확정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난 사람들 중에서 선정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또 반인륜 범죄나 부정부패 범죄자 등은 아예 특사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법률로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인 이헌 변호사(법무법인 홍익)는 “사면권이 무분별·무제한적으로 이뤄지면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감안해 현재 여러 가지 제도적인 개선 방안이 시도되고 있다”며 “무엇보다 사면심사위원회의 활동이 설립취지에 맞게 운용되고 그 역할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