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교과서 내용의 이념적 스펙트럼 따위를 언급하고 싶진 않다. 재선정 논쟁에서 드러난 특정 사관이나 가치관을 논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없다. 정작 이번 일의 폐해는 다른 데 있다. 다양함 가운데 ‘옳음’을 골라 주류 가치관으로 삼을 만한 ‘사회적 이성’을 불신하고 있어 문제다. 관변이 아닌, 시민사회 자율의 여과 기능을 홀대하는 것 같아 걱정된다.
현존 검인정 교과서의 내용은 차치하자. 형식에 있어 이들은 어찌됐든 정상적인 검정을 거쳤고, 과정 또한 교육 소비자 계층 나름의 자율적 선택을 거친 것이다.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소정의 민주적 절차와 공동체 이성의 여과를 통과한 것이다. 그런 마당에 결코 가치중립적일 수 없는 특정 정치·행정 주체가 이를 새삼 관제한다는 자체가 모순이다.
물론 교과서를 바꿀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교육 수요자 중심의 갑론을박에 그 선택을 맡겨야 할 것이다. 정녕 그 내용이 문제라면, 역시 시민사회 자율의 검증 도마에 올려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이 번거롭다 해서 공권력의 행정행위로 강제해서야 되겠는가. 지금 세상의 코드는 자율과 개방이며, 관변이 아닌 민간이다. 국정 교과서가 아닌, 민간이 고른 ‘검인정’임을 특히 유의해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과정을 존중하고, 자율적이며 다양한 절차를 보장하는 것은 교과서 내용 만큼 중요하다. 그런 행위 자체가 자라나는 2세들에겐 교과서다. 그런 ‘기본’을 벗어났기 때문에라도, 일본 문부성이나 동북사관의 중국이 안팎으로 욕을 먹었다. 이번 일은 교과서 문제가 아니다. 절차 민주주의의 실체를 다투는 일이며, 이 시대의 민주적 건강수치를 측정하는 일이다. 그 귀결에 따라선, 반면교사 혹은 귀감이 될 ‘사실(史實)’로 후일 교과서에 실릴 큰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