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발명가 세 명을 만났다. 식품, 미용, 주방도구 등 일상생활에서 응용될 수 있는 제품들은 무궁무진하다. 가정과 밀접하게 활동하는 여성들의 강점이 돋보였다. 이들의 노후대책은 따로 없다.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것을 실현하는 일에 인생 후반을 바친 것 자체에 만족하고 있었다. 번뜩하는 아이디어를 제품화화기 위해 변신한 아줌마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글·사진= 이한선 기자 griffin@
"직업 아니더라도 삶의 목표 필요"
발로 밟는 싱크대 절수기 발명 이지밸브 김예애 대표
김예애 대표 |
은퇴 후에도 일을 가져야 한다는 김예애 이지밸브 사장(79)의 설명에서는 연륜이 배어 나왔다. 그는 30년생으로 내년이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인데도 정정해 보였다.
그는 지방에서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15년 정도 교사생활을 하다 그 당시만 해도 박봉이어서 생계가 어려워서 돈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잡지사, 신문사 광고부 등에서 돈 되는 데로 직장을 다녔고 이후에 동양자수 교습소를 하면서 돈을 벌었지만 중국의 저가 공습에 그마저 접어야 했다.
이후 살림살이를 하다 도저히 목표가 없는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된 김 사장은 어떻게 물을 아낄 수 없을까 몰두하기 시작했다. 수도꼭지를 여러 개 사서 분해해 보고는 모양만 다르고 시스템이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절수가 되지 않는 원인을 찾다가 방법의 차이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바로 이거다' 생각이 들었어요. 손으로는 일만 하게 하고 발로 조작하게 하자. 수도꼭지 손잡이는 틀었다 놨다 귀찮아서 안하게 돼요. 손은 일만 하게 하고 발로 조정하면 되지 않겠느냐 해서 이걸 만들게 됐어요. 발로 하니 낭비가 전혀 없어요. 이걸 생각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렸습니다."
현재는 발로 움직이는 벨브로 찬물 더운물 구별도 할 수 있고 미지근한 물도 틀 수 있다. 물을 가득 받아야 할 일 있을 때는 발쪽의 밸브를 걸어놓으면 된다. 이것만 설치해 놓으면 절수가 저절로 된다고 김 사장은 강조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돈도 많이 들고 내 늙은 청춘을 이걸 만드는데 다 받쳤어요.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많이 걸리지 않았을테죠. 하지만 또 전공을 했으면 틀에 박힌 사고 때문에 못 만들어 냈을 거에요. 여자니까 해냈지요. 싱크대와 관련이 깊으니까요."
김 사장은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해 제품을 완성했지만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제품을 완성한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모은 돈은 다 써버렸어요. 집념을 갖다 보면 돈 까먹으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요. 제품 개발에 돈 많이 들었어도 후회는 없어요. 목표한 것이 성공했잖아요. 하지만 판로가 문제지요. 상술에 관한 문제인데 판매 쪽은 누가 맡아서 해줬으면 좋겠어요. 상품화 한 지는 3년 됐는데 이걸로 이제 벌어야죠."
제품 개발과정에서 애로사항은 많았다.
"개발할 때 설명을 해주고 협동해서 않겠느냐 하면 댁에 가서 애나 보라면서 상대도 안해주는 경우가 많았죠. 당치도 않은 말 한다고요. 어떻게 발로 하냐, 손으로 하지 이렇게요. 하지만 난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사고의 변화라고 할까 거기에 힘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김 사장의 건강 비결은 따로 없었다. 지하철로 꼭 다니고, 이동하는 게 저절로 운동이 된다. 되도록 걸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현재 건설회사와 접촉해 아파트 분양 때 옵션으로 제품을 공급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전 세계에 제품을 보급하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다.
건강을 걱정하는 아들이 집에서 쉬라고 권하지만 김 사장은 단호하다.
"내가 닭장 속의 닭도 아니고 그렇게 살 수는 없지 않아요."
"일상 속 불편 개선이 창업 아이템"
주부에서 특허제품개발 CEO로… 에스엔디트리캡 황지경 대표
황지경 대표 |
"요즘 주부들은 모든 면에 엔터테이너예요.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아이디어도 많고요. 주부들 누구나 제품을 쓰다가 불편한 점을 개선해볼까 하는 아이디어를 갖게 되지요. 단지 추진력이 약하다는 점이 있지요. 제가 별다른 것이 없어요. 틀리다면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고 현실화시켰다는 것이죠. 현실을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쳐 보았으면 합니다. 발명이라는 게 크게 기계나 아이티 이런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하는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용기를 가지세요."
황 사장의 말처럼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려는 집요함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그는 주부모니터 활동을 하면서 제품개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아이들이 키울 때는 바쁘게 살다가 학교에 가게 되니까 시간이 많이 남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주부들이 일반사회에 나오기 어렵게 돼 있지요. 인터넷을 찾다가 2001년 주부모니터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활동을 하면서 보니 주부들이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더라고요.모니터 활동을 하려면 그만큼 지식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연구도 하고. 함께 얘기를 하게 되니까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컵 하나를 봐도 이렇게 보완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모니터 활동을 많이들 하시는데 그런 주부들이 가능성이 많다고 봐요."
그는 거의 5년 동안 제품개발의 꿈을 품고 있었다. 사우나에 가게 되면 사업 하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고 그러다가 2005년 에 꼭 특허를 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짧지만 특허 법인에서 근무한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제품 개발에 2년이 걸렸어요. 개인사업자로 사업자등록을 우선 하고 조그만 사무실을 내서 제품을 만들어 봤어요. 동대문 가서 재료를 사다가 몇 번을 다시 만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폐기처분하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어요. 홈페이지도 만들고 포장기계도 만들고 회사의 틀을 갖추어 갔어요. 그러다가 창업센터를 알게 됐습니다. 사업계획서를 학교에 내고 심사 받은 후에 입주하게 됐는데 운영비용도 절약 되고 도움이 많이 돼요."
아이를 키우던 주부가 창업을 한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공부를 먼저 하고 마음을 다잡고 사회에 진출했지만 제품 만드는 것 외에 마케팅, 행정, 자금 대출문제 등에 지식이 전혀 없었다. 대출을 받기 위해 심사를 받는데도 은행이 여자라 꺼려하는 면이 있었다. 자신의 사업인데 남편 보증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여사장들이 두각을 많이 나타내고 있어 환경이 개선돼 나가고 있어 위안이 된다고 한다.
황 사장은 주부CEO의 여러 가지 강점들을 얘기했다.
"주부CEO의 공통점이 많아요. 엄마 역할을 통해 섬세하고 직원들을 가족과 같이 여기죠. 배포도 크고 거래처를 잘 배려해요. 직접 장을 봐서 음식을 하는 등 계획을 세워서 살림을 해봤기 때문에 남자 못지않은 장점이 있지요."
그는 국내 판촉시장과 해외수출에 주목할 계획이다. 호텔이나 수입차 판촉용의 고급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외국 시장을 공략하려 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홍콩 미용박람회에 참가해요. 중소기업청 도움도 많이 받고 있는데 작년에는 러시아 바이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쪽 바이어도 여자 사장이어서 통하는 게 있더라고요"
황 사장은 의외로 소박한 희망을 갖고 있었다. 사업 아이템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 알기 때문에 크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조금씩 회사를 보강해서 직원들 복리후생에 신경을 써주는 사장이 되고 싶어요.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꾸준히 가는 그런 작지만 알찬 기업을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일한다는 자체가 즐겁고 직원들도 거의 주부들이에요. 모두 아이들 키우는 주부 입장에서 같이 성장해 나간다는 생각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성공
대학강사 하다 '식품연구소' 창업… 다손 조은경 대표
조은경 대표 |
"공학박사 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강의를 했었어요. 대학에서의 연구 활동이 실제 생산현장과 연관성이 낮다고 느꼈죠. 연구보고서가 제출돼도 묻혀버리는 것이 많았습니다. 연구계획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쓰겠다고 한 것인데 말이에요. 보고서를 위한 연구가 아니고 실제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연구를 해야 겠다 마음먹고 나와서 독립적으로 연구소를 시작했습니다."
조 사장은 우리나라 음식 분야의 강점을 여러 가지로 들었다.
.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음식이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것이 많아요. 조상님들이 농.축.수산물을 삭혀서 먹었죠. 그래서 면역력도 강하고 건강한데 이것이 세계적으로 입증되고 있어요. 장류, 청국장, 김치 이런 것이 앞으로 각광을 받을 겁니다. 해외에서는 발효식품 하면 요구르트 치즈가 다인데 우리나라는 수도 없이 많은 종류가 있어요. 미생물도 무한히 많아서 실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재래식 방법을 개선해 기능을 극대화 하고 건강 기능식품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 찾고 있어요."
그러나 그는 한국이 이처럼 발효 종주국인데도 일본이 이에 관한 제품화를 먼저 시작한 것을 지적한다. 김치를 상용화 하는데 있어서도 일본은 김치가 만들어 질 때 어떤 균들이 어떻게 활동 하는지 밝히고 그 균만 뽑아서 판다는 것이다. 미생물을 캡슐에 넣어서 고부가가치로 제품화 할 수 있는데 그걸 우리는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조 사장도 음식의 효능을 밝히고 상품화해 해외에 내놓으려 한다.
"청국장이 왜 좋은지 안 밝혀져 있었는데 그 기능을 밝히기도 했어요. 청국장은 끓여 먹으면 안된다고 7년 전부터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발효 한 다음 균이 살아 있도록 분말로 먹던가 해야 좋습니다. 동결건조를 해서 균이 살아있게 하는 방법을 개발했어요. 열로 말리면 균 죽기 때문이지요. 제품화해서 미국에 65만달러를 수출하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장개선.변비개선제로 판매 중입니다."
식품 분야에서 대기업 말고는 자체 연구소를 갖고 있는 회사가 별로 없어 다손은 그런 회사들의 연구도 대행하고 있다. 의뢰가 들어오면 완제품까지 구성해서 알려주고 연구용역비를 받는다. 한마디로 연구개발형 회사다.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다.
"제조사에서 연구를 집중적으로 못하고 대학에 많이 의뢰하는데 대학은 기초연구에 강하고 응용하는 부분은 약한 면이 있어요. 저희 실험실에서는 공장에 가서 현실에 응용하기 쉽게 재구성해서 드리기 때문에 제품과 바로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의 연구는 식품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화장품 등 다양한 부문에 응용이 되고 있다. 특산품으로 부가가치 높은 제품 개발하고 싶어 하는 지자체들과 협력하기도 한다. 장흥의 어성초, 삼백초의 항균, 항염 작용을 강화해서 기능성 물질을 만들어 화장품 소재로 만들기도 했다.
조 사장이 회사의 강점을 설명했다.
"소재 개발하고 연구개발 해드리는 회사인데 발효기술을 갖고 있어서 생약 제재도 약탕에 오래 끓여서 몸에 이로운 물질을 짜서 먹는데 물에 안 녹는 것 버려지거든요. 우리는 이것을 발효 시켜서 기능성 성분을 훨씬 높일 수 있어요. 완전히 새로운 분야죠. 발효 한약, 화장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어요. 기술 혁신형 바이오 벤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는 되는데 유통이 어려워요. 그래서 유통전문회사와 거래를 해서 제품을 공급하고 있지요."
다손은 2006년에 법인으로 전환해 연구만 하는 게 아니라 생산. 판매도 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농식품부, 중소기업청 등 정부과제도 맡고 있다.
그런 만큼 조 사장의 책임감도 클 수 밖에 없다.
"정말 해야되는 일이라는 사명감 같은 것을 느낍니다. 우리 아니면 만들지 못하는 것이 만들어지면 보람이 있지요. 항상 앞서서 새로운 기술을 상품화 하는 공정을 만들어야 돼서 부담도 많습니다. 머리가 돌아가는 한 계속 일할 수 있겠지만 은퇴하게 되면 후배들이 계속 이어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