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정성구 기자] 1년 가까이 긴 공방을 벌이고 있는 삼성과 애플의 특허 소송전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회사 차원의 제품 디자인 공방으로 시작된 특허전이 최고경영자(CEO)까지 영향을 미치는 등 확전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12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은 지난 4일 애플이 증인녹취 신청한 삼성전자 직원 14명 중 최지성 부회장<사진>을 포함해 5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폴 그레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판사는 "애플은 최 부회장이 삼성전자가 애플의 제품을 모방하도록 지시하는 데 깊숙이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애플이 제출한 삼성전자 직원들의 이메일과 회의록 등 증거들을 검토한 결과 원고의 주장을 일부 수용해 제한적인 증언을 명령한다"고 밝혔다.
다만 폴 그레월 판사는 최 부회장의 증언 녹취는 2시간 이내로 제한할 것임을 명시했다. 애플의 주장을 일부만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최 부회장은 애플 측 변호사가 참석한 가운데 삼성전자 집무실 등에서 증언 녹취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측은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은 현재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을 이끌고 있는 신종균 무선사업부장(사장)의 증언 요구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사장이 직접 디자인 변경에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는 판단에서다.
그레월 판사는 “애플이 제출한 증거에서 신 사장이 직접 디자인 변경 등을 지시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신 사장에 대한 애플의 증인 신청을 기각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회사 차원에서 이뤄졌던 애플과의 특허전이 CEO까지 확대되면서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올 상반기 ‘갤럭시S3’, ‘갤럭시탭2’ 등 신제품 출시를 앞둔 시점에서 CEO의 증언 채택이 국제적인 구설로 이어져 향후 사업 전략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해 강경대응 입장을 고수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애플의 증인채택은 미국 내 소송과정에서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일이지만 향후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소송전을 고려해 강경대응 할 방침”이라며 “서로의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애플 쪽 실무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해 맞불 작전을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애플의 증인 채택 자체가 삼성과의 특허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전종학 경은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판사가 간혹 사건의 경중에 따라 CEO를 부르는 경우가 있다”며 “우리나라 산업구조상 이슈가 될 수는 있지만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우성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도 “미국 소송에서 CEO가 법정에 출석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애플 측에 유리하다는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며 “애플이 매체상에서 제기했던 것에 대해 다른 증인과 대조하는 것일 뿐 일반소송에서 증인 채택은 소송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하나의 전략일 뿐 큰 의미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재 양사는 한국을 포함한 미국과 호주 등 9개국에서 30여건에 달하는 특허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