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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행을 팔면 내가 죽고, 못 팔면 나라가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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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원 기자

승인 : 2013. 01. 09. 14:57

* 윤광원의 머니임팩트(제87회) - 금융구조조정의 애환(7)
1999년 12월 한국정부와 뉴브리지캐피탈은 제일은행 매각 본계약을 체결했다.

아시아투데이 윤광원 기자(세종) = 제일은행은 어떻게 해서 사모펀드에 넘어가게 됐을까.


당시 대표적 부실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의 운명은 199712월 이미 결정돼 있었다. 무조건 해외 매각이었다.

 

외환위기가 본격화되자 제일·서울은행은 '뱅크런(대량 인출사태)'으로 파산위기에 몰렸다. 국제통화기금(IMF)두 은행을 폐쇄하라고 정부를 몰아붙였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렇게 약속했다. “지금 두 은행을 청산하면 시장 충격을 견딜 수 없다. 일단 공적자금으로 은행을 살리겠다. 그리고 해외에 팔겠다.”

 

1215일 임창렬 당시 경제부총리가 이런 내용의 처리 방안을 발표한다. ‘19981115로 매각 시점까지 못 박았다.

 

매각 주간사인 모건스탠리는 국제통화기금(IMF)와 합의한 시한인 1115일까지 매각을 성사시키기 위해 49개 외국금융기관과 접촉했으나, 관심을 표명한 곳은 영국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미국 시티은행, 그리고 뉴브리지캐피털을 중심으로 한 투자컨소시엄 뿐이었다.

 

최종적으로 매수의사를 밝혀온 HSBC 및 뉴브리지 컨소시엄과 매각협상을 시작했는데, 둘 다 제일은행에만 관심이 있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두 원매자 중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시한 조건이 유리하다고 판단, 마침내 1231일 제일은행 매각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그 양해각서 내용에 대해 국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뉴브리지는 단기적 투자이익만 추구하는 사모펀드로서 금융업 경험이 없어, 선진금융기법 도입을 통해 우리 금융 선진화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당초의 해외매각 취지를 이룰 수 없을 것이며, 인수가격이나 영업권 인정액이 공적자금조차 회수하기 힘든 헐값매각이라는 것이다.

 

특히 2년 이내에 발생하는 부실채권에 대해서는 정부가 매입하거나 대손충당금을 적립해 주는 '풋백 옵션'100% 인정해준 것이 논란이 됐다.

 

이에 대해 뉴브리지 측은 "우리는 미국의 유수 투자회사가 합작한 투자전문회사로서 40여 개 사에 대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금융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1980년대 말 뱅크아메리카 및 아메리칸 세이빙스 뱅크를 인수해 정상화시킨 경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의 해외매각이 대외적으로 약속돼 있었고 현실적으로 더 이상의 매수희망자를 찾기도 힘든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업권의 가격을 올려 받기는 더욱 어려웠다.

 

겨우 정부보유주식의 0.5% 신주인수권을 추가로 확보했을 뿐이다. 또한 풋백 옵션을 부여해 앞으로 일정기간 부실발생으로부터 오는 손실을 보상해 주는 것도 필요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규성, 한국의 외환위기)

 

양해각서체결 후에도 양측은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계약하고자 지루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본 계약이 체결된 것은 1년 후인 19991223일이다.

 

최종 매각조건은 뉴브리지가 5000억원에 정부보유주식 50.99%를 인수하고, 정부는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은행 발행주식의 5%에 해당하는 보통주를 3년 후 인수할 수 있는 신주인수권을 받았다.

 

풋백 옵션은 기존 여신에 대해 인수 후 2년 이내, 워크아웃 여신은 3년 이내에 발생하는 부실여신을 정부가 책임져주기로 했다. 고정이하 부실여신은 인수되지 않았다.

 

금감위는 제일은행이 자본금을 44867억원에서 9806억원으로 감자하는 것을 승인했다. 뉴브리지가 실제 투자한 5000억원으로 지분율 50.99%를 맞추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정부가 57000억원을 출자한 은행의 51% 지분 29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5000억원에 팔았으니, 공짜를 넘어 오히려 24000억원을 더 얹어주는 꼴이었다. 부실채권에 대해 이미 투입했거나 투입할 공적자금까지 계산하면, 얼마를 더 얹어주는 셈인지 알 수 없었다.

 

제일은행의 매각은 뉴브리지캐피털에게는 부실이 많으면 정부에 넘기고, 부실이 적으면 내가 먹는 '꽃놀이 패'가 됐다" (강만수,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30

 

이에 대해 당시 매각 주역이었던 이헌재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은행 매각. 아무리 잘해도 칭찬받을 수 없는 일이다. 비싸게 팔면 그 좋은 은행을 왜 팔았느냐는 시비에, 반대 경우엔 헐값 매각시비에 시달릴 게 뻔했다. 매국노 소리나 안 들으면 천만다행일 것이었다.

 

이 골치 아픈 일이 금감위로 떨어진 건 19984. '금융 구조조정은 금감위가 일괄적으로 하는 게 좋겠다'IMF의 권고 때문이었다. 시한은 7개월밖에 안 남았을 때였다.

 

시장은 썰렁했다. 도무지 사겠다는 이가 없었다. 모건스탠리를 앞세워 40여 곳의 외국 금융회사를 노크했다. 반응이 없었다. 씨티은행은 '제일은행 지점 중 괜찮은 것만 100개를 골라 인수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괜찮은 지점 100개를 팔아버리면 남은 건 누가 산단 말인가.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HSBC은행이 배짱을 부린 것도 그래서였다. HSBC는 빚잔치에라도 온 양 거드름을 부렸다. ‘나중에 자산이 부실해지면 되사주는 풋백 옵션을 걸어라’, ‘지분은 우리가 100% 인수하겠다고 요구했다.

 

풋백 옵션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정부가 지분을 가능한 한 많이 들고 있어야 은행이 좋아진 뒤 되팔아 공적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뉴브리지가 등장한 건 바로 그때, HSBC와 실랑이가 한창이던 1211일이었다. 한양대 김지홍 교수를 통해 웨이지안 샨 뉴브리지 아시아 본부장이 매각팀장인 진동수 금감위 제1심의관을 찾았다.

 

웨이지안 샨은 정부의 고민을 꿰고 있었다. ‘지분의 49%를 주겠다. 세계적인 경영자를 영입해 은행을 정상화시키겠다.’ 한국 정부가 원하는 걸 정확히 짚어왔다.

 

그러나 뉴브리지는 투자펀드다. 은행이 정상화되면 돈을 챙겨 떠날 게 뻔했다. 정부로선 어떻게든 HSBC와 계약하고 싶었다. ‘세계 최대 은행에 팔면 선진 경영 기법 도입과 국제 신인도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HSBC는 완강했다.

 

결국 19981231일 정부는 뉴브리지와 제일은행 매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 불과 20일 만에 이뤄진 전격 결정이었다” (이헌재, 위기를 쏘다)

 

국제사회는 이를 한국 금융 구조조정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국제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MOU 체결 소식이 전해진 직후 한국 신용등급을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두 달 뒤 한국 신용등급은 Ba1에서 Baa3로 한 단계 올라갔다. 신용등급 상승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었다.

 

이와 관련, 지난 20033월 송희영 당시 조선일보 워싱턴지국장은 칼럼에서 뉴브리지와 당시 미 클린턴 행정부와의 유착설을 제기했다.

 

"이런 이상한 계약과 관련, 워싱턴에서는 클린턴 정권과 뉴브리지와의 관계를 암시하는 얘기들이 흘러 다닌다. 뉴브리지가 영국계 초대형 은행그룹인 HSBC와 인수경합을 벌일 때나 인수조건 협상을 전개할 때, 백악관이 뉴브리지를 지원했다는 증언들이 있다.

 

지난 19997월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직전, 청와대는 매각협상에 쫓기는 분위기였다. 햇볕정책 지지를 합의한 김대중-클린턴 회담에서 일개 은행의 매각협상이 거론되는, 이례적인 광경이 벌어졌다고 한다.

 

정부는 제일은행 매각을 실패로 공식 인정하지는 않지만,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파장이 이쯤에서 끝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현대투자신탁증권과 현대증권을 인수하려는 미국회사가 제일은행의 매각조건과 엇비슷한 요구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어느 미국 경영인 입에선 대우자동차를 매각할 때도 한국이 공적자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많은 한국인들은 뉴브리지 선정과정, 이해하기 힘든 계약조건의 결정배경, 백악관과 청와대 간의 정치적 거래가능성 등에 관해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헌재의 증언에도 석연찮은 부분이 있다.

 

금감위원장실로 문제의 팩스가 들어온 건 19996월 하순께였다. 읽어 보니 기가 막혔다. ‘김대중(DJ) 대통령님의 방미(訪美) 전에 제일은행 매각이 원활히 성사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십시오.’ 청와대 한 수석급 인사가 보낸 것이었다.

 

(당시는 MOU 체결 후 본 계약을 놓고 양측의 줄다리기가 한창일 때다 : 필자 )

 

DJ의 조바심을 모르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귀띔이 들어왔다. 청와대 공보수석실의 박선숙 비서관도 그중 하나였다. ‘위원장님이 제일은행을 안 팔려고 한다는 얘기가 있어요. 금감위 관료들이 사보타주(sabotage·태업)한다고도 하고.’

 

한마디로 이헌재가 제일은행 매각을 방해하고 있다는 얘기가 청와대에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DJ가 수석들에게 왜 매각이 빨리 안 되느냐고 대놓고 짜증을 냈다는 얘기도 들렸다.

 

청와대는 국제 여론이 신경 쓰이는 것이었다. 이미 한국이 구조조정 의지가 없어 매각을 미루고 있다는 외신이 나오고 있었다.

 

미국 정치권에서도 압력이 들어오는 듯했다. 뉴브리지는 미국 의회에서 영향력이 강했다. 공동대표인 리처드 블럼의 아내가 미 민주당 상원의원 다이앤 파인스타인이었다. 또 다른 공동대표인 데이비드 본더먼은 공화당 실세라고 했다.

 

본더먼은 직접 한국을 찾기도 했다. 금감위원장실에 들러 협상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뒤 청와대까지 들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중략)

 

밀고 당기는 와중에 뉴브리지가 청와대에 진정서를 넣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금감위 협상팀이 시간을 끌고 있다. 매각이 결렬되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신용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개의치 않았다.” (위기를 쏘다)

 

이헌재는 매각 작업의 중압감은 담당자가 아니면 모른다. 나는 가까운 몇몇 직원에게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제일은행을 팔면 내가 죽고, 못 팔면 나라가 망한다.’ 아무리 비싸게 판들 팔린 은행이 살아나고 나면, 판 사람은 매국노로 몰린다.

 

당시 얼마나 다급했던지, 그 은행이 얼마나 부실했던지, 벼랑 끝 상황은 과거일 뿐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멀쩡한 은행을 왜 헐값에 팔았느냐고 뒤집어씌우기 일쑤다. 그렇다고 안 팔 수도 없다. 국제사회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시장이 또 흔들린다고 그 고충을 술회했다.

 

이렇게 비장하게, 결사적으로 임한 협상의 결과가 고작 그 정도였으니 대체 누굴 탓하랴.

 

뉴브리지측은 제일은행 지분(48.56%)을 다시 20051월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SCB)16511억원에 매각했다. 5년 만에 투자금의 3배 이상을 챙긴 것이다. 당시 매각차익은 환차익을 포함해 총 11800여 억원.

 

정부 및 예금보험기금 역시 같은 조건으로 지분을 양도, 예보(48.49%)16487억원, 정부(2.95%)1002억원을 받았다.


그러나 뉴브리지 측은 "한국과 조세회피조약을 맺은 말레이시아 라부안을 통해서 투자를 했기 때문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매각차익에 대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아, '먹튀'라는 비난을 받았다. 물론 200억원의 사회공헌 기부로 생색을 내기는 했지만, 최소한의 한국 달래기였을 뿐이다.

 

지난 2005년 발간된 정부의 공적자금백서는 제일은행 정리의 최종 결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20056월말 현재 제일은행에 지원된 공적자금은 약 177000억원이며, 현재 진행중인 면책보상 등에 대한 향후 추가적인 자금소요를 감안할 경우, 제일은행 정리와 관련된 공적자금의 총 지원규모는 약 17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원된 공적자금은 유상감자·지분매각으로 37000억원, 부실채권 매각 등으로 86000억원 등 총 123000억원이 회수됐고, 향후 자산매각을 통해 약 5000억원 내외의 추가회수가 예상된다. 결국 제일은행을 정리하는 데 소요된 비용은 약 5조원 내외 수준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국민들의 혈세 5조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에 대해 이헌재는 이렇게 주장했다.

 

제일은행 매각은 전심전력으로 최선을 다했다. 일각에선 터무니없이 싼값에 팔아넘겼다고 주장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생각했던 것보다 정부는 훨씬 더 많은 돈을 쏟아 부었다. 모두 178000억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이 중 12조원 가량은 회수했다. 정부가 떠안았던 부실채권을 되 팔고 제일은행을 스탠다드차타드(SC)에 매각하면서 받은 돈이다. 아직 회수하지 못한 자금은 53000억원 정도.

 

총자산 48조원짜리 제일은행을 살리는 데 쓴 공적자금으로 보면 과한 금액은 아니다. 초기에 부실 정리를 위해 자본금 57086억원을 날린 데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매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이게 내 변명 아닌 변명이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금융회사가 아닌 투자 펀드에 제일은행을 넘겼다는 것이다. 매각 목적 중 하나는 해외 선진 경영 기법을 들여오는 것이었다.” (이헌재, 위기를 쏘다)

 

그후 제일은행은 대주주의 입장을 반영해 은행명을 SC제일은행으로 바꾸었다가 지난해엔 아예 SC은행으로 개명했다. '제일'이란 은행은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더불어 외환위기 전까지 국내 금융계를 대표했던 5대 시중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의 명칭 또한 완전히 세월 속에 묻혀버렸다.

 

 

윤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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