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현화 기자(가운데)가 29일 서울역 무료급식소 '따스한 채움터'에서 자원봉사 학생들과 함께 식판을 나르고 있다. |
나눔선교교회 대표 박종환(55) 목사는 설 연휴를 앞두고 노숙인 무료급식 풍경을 취재하러 나온 기자에게 앞치마부터 들이밀었다.
무언의 압력이었다. 얼떨결에 앞치마를 두르고 ‘일일 봉사 요원’이 됐다.
자원봉사를 하는 학생들은 식판에 반찬부터 담았다. 메뉴는 오징어 무침과 꼼장어 볶음, 김치다.
속속 들어와 식탁 앞에 앉는다. 금새 자리가 꽉 찼다.
밥과 국은 최대한 빨리 퍼담아야 한다. 기자는 국 담당을 맡았다. 국을 풀 때마다 허리를 구부렸다 펴니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적당량을 담지 못해 애를 먹었다.
식판 더미를 나를 때는 나눔공동체를 돕는 조용석(28)씨에게 “막내야! 막내야!” 하고 소리쳐 부른다. 국물이 넘치면 행주로 닦으라고 곧바로 지시했다. “애기밥, 애기밥!”도 끊임없이 외친다. 적은 양을 원하는 손님에게 주는 밥이 바로 애기밥이다.
김해연 나눔공동체 원장 덕분에 급식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한참 국을 푸고 있는데 입구 쪽이 소란스러워진다. 잠깐의 실랑이가 오가다 “에이, 안 먹어” 소리가 들려 온다. 새치기한 사람이 있어 시비가 붙은 것이다.
채움터 직원 주재민(43)씨가 소란을 피우는 이를 끌고 나가 상황을 신속히 통제했다. 김 원장에 따르면 종종 이런 일이 있단다.
노숙인들은 주로 두터운 방한복을 껴입었다. 은색 돗자리와 보온용 담요를 노끈으로 둘둘 말아 어깨에 걸고 다니는 이들도 많았다. 몸에 상처가 있는 이들도 있고, 다리가 불편한 이들도 가끔씩 보였다.
50~60대 남성이 대부분이었지만 여성이나 20~30대 젊은 남성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가끔 식판을 반납하러 오면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주는 이들이 있었다.
다리를 약간 저는 한 노숙인이 환한 얼굴로 ‘잘 먹었다’고 인사했다. 밥을 많이 줬다고, 반대로 적게 줬다고 푸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묵묵히 식사하고 나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하면 “고맙습니다”는 인사도 돌아왔다.
한 시간쯤 지나니 손님이 뜸해졌다. 이제 마무리에 들어갔다. 바쁘게 설거지하느라 물이 바닥에 흘러 흥건한 바닥을 마대로 닦아냈다.
식탁도, 배식대도 깨끗하게 닦고 식판통도 옮겼다. 마지막 일은 원래 공용 물품이 아닌 나눔공동체 물품들을 다시 돌려 놓는 일. 걸어서 약 100m 떨어진 나눔공동체까지 걸어갔다.
김해연 원장은 똑같이 생긴 통들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정확하게 짚어냈다. “가벼워 보이니 이건 반찬이네”, “무거워 보이니 이건 식판이네”하고 물품을 빠르게 분류해 정리했다. “12년의 노하우”라고 했다.
이날 봉사에 참여한 홍성은(21)씨는 설거지 물이 넘치는 바람에 세무 부츠가 흠뻑 젖었다. 고무장갑을 꼈어도 물이 들어가 손에는 물기가 있었다. 그래도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고혜미(25)씨는 “급식을 하다 보면 정말 고마워하시는 분들이 있다.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힘이 난다”고 했다.
임수영(23)씨는 “노숙자들이 무서운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았다”면서, 노숙자들도 평범한 이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고 했다. 이들은 "급식 봉사를 해서 뿌듯했다"며 ‘기회가 온다면 다시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