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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 그리고 살인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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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영 기자

승인 : 2019. 11. 18. 06:00

홈피 프로필 사진(강호석 변호사)
법무법인 정향 강호석 변호사
최근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유명한 화성 연쇄살인사건 진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밝혀졌다. 진범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사람의 재심 청구 문제도 같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증거재판주의에 따른 법원 판결에도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2018년 4월 12일 대법원은 ‘행정’소송 사건에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성인지 감수성에 반하는 증거판단이라는 취지로 최초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하며 판결을 선고했다. 이후 각급 법원에서는 성범죄 ‘형사’소송 사건을 심리한 후에도 거의 모든 판결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원용하기 시작했다.

위 대법원 판결 선고 이후 만 1년간 각급 법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원용하여 선고한 ‘형사’ 판결 57건 중 56건이 유죄로 선고되었다는 통계가 있다. 유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아졌다는 의미다.

한편, 2008년부터 2016년까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성범죄 형사사건에서, 배심원의 만장일치 또는 다수결에 의한 무죄 평결을 재판부가 유죄 판결로 결론을 뒤집은 사례도 다수(총 12건) 발견된다. 사회 평균인과 법관 사이에도 인식과 평가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 뛰어나다, 떨어진다 등의 추상적 관념인 ‘감수성’이 법률 용어로 이제 형사 판결에도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형사 판결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고 형사 재판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 및 증거재판주의에 반할 우려가 있다는 비판론도 제기된다.
서울고등법원은 2019년 3월 재판장 전원이 모여 ‘성희롱, 성폭행 사건에서의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대법원 산하 각종 연구회에서도 위와 관련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아직 법원 내부에서 조차 ‘형사’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의 적용범위에 대하여 명확히 정립된 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을 방증한다.

실제로 성범죄 전담 재판부에 근무하는 한 판사는, 위 성인지 감수성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강력히 의심스러운 형사사건조차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법관으로 오해 받을 것이 염려되어 그 신빙성을 배척한 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것이 훨씬 어려워졌다는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성범죄 형사사건에서 피해자 보호의 중요성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비록 열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무고한 범죄자를 만들면 결코 안된다(in dubio pro reo). 무엇보다 성범죄는 다른 범죄와 달리 형벌 외에도 취업제한, 신상정보 등록 등 부가적인 제제가 수반될 수 있다. 즉, 유죄가 인정된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침익적인 제재가 부과될 수 있는 것이다.

피해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을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어떠한 사례에 적용할 것인지, 성범죄 처벌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입법 정책적 기준을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에 대하여도 사회 구성원 전체의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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