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으로 국산화율 높여야
신제품에 국산 신기술·신장비 써야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WTO 제소의 첫 단계인 양자협의 요청서 작성을 위한 검토에 착수했다. 제소 시점은 아직 특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제소장을 보낸 후엔 내용 변경이나 추가가 불가능하므로 4일 일본정부의 시행까지 지켜보고 정확한 판단 하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양자협의 요청 제소장을 허술하게 써서 발목 잡힐 순 없기 때문에 관련업계와 협의하는 등 모든 것을 고려해 최선의 검토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정부가 유일한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당장 수개월 앞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수년을 기다려야 하는 조치에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미국과 WTO 제소에서 승소한 전례가 있는 한 기업 관계자는 “제소 이후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당장 해결방안이 없기 때문에 가혹한 규제를 기업이 온전히 감내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며 “결과가 나와도 해당국이 이를 인정할 지 여부가 대상국의 대외 환경적 요소에 따라 다르다보니 WTO 제소는 완전한 해결책으로 보기엔 부족하다”고 했다.
WTO 제소 절차는 보통 3년이 걸린다. 1심이라 볼 수 있는 패널심까지 2년 가까이 소요되고 상대가 항소한다면 1년이 더 걸린다. 최근 우리가 승소한 미국과의 유정용 강관, 세탁기에 대한 반덤핑 등 두 사례 모두 3년 이상 걸렸다.
문제는 당장 해결 방안이 없다는 데 있다. 지목된 3개 품목은 일본이 세계시장 90%를 장악하고 있어 지금 당장 우리 기업들이 대체하지 못하는 상태다. 국내 기업들이 약 3개월분의 재고를 비축하고 있어 추가로 사들이는 과정에서 매번 큰 불확실성을 안게 됐다. 관련기업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다.
설령 3년 뒤 승소하더라도 일본에 규제 철폐 의무는 발생하지만, 강제 사항이 아니어서 시행할 지는 미지수다. 철폐를 안하면 우리로선 보상을 요구하거나 ‘양허 정지’를 통해 적법하게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다. 하지만 보복관세는 복잡한 산업 생태계를 해칠 수 있어 실제 시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전문가들은 단기책이 없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결국 합종연횡식 소재 개발·육성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국내 기업들이 손잡고 관련 소재 육성에 달려들 가능성이 크다”며 “삼성이나 SK하이닉스는 그동안 기존 거래선을 고려하다보니 일본기업 제품을 제공받는 일이 많았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기업을 믿고 키우는 행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국산화에 나설 명분이 만들어졌고 우리 기업들이 하나로 똘똘 뭉칠 수 있는 계기도 됐다는 설명이다.
다만 3개 품목 모두 국산화가 가능함에도 개발비용과 생산단가 등 실리를 따져봐야 하고, 순도면에서 일본 수준을 따라가기엔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원은 “해당 소재를 서둘러 만들어 국산화율을 높이는 방식보다 대기업 신제품 개발에 일본제품을 배제하고 국내 중소기업의 신소재·신장비를 사용한다면 더 의미 있는 국산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