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 상 계약위반 예외조항 있을 시 법적대응 힘들 수도
삼성전자 "공식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 없다. 상황 파악 중"
그럼에도 삼성전자 내부에서 법적대응 검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그만큼 이번 사태가 삼성전자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로서는 일본의 강력한 수출 규제가 이뤄질 경우, 재고 소진 임계점인 2~3개월 안에는 해법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일 삼성전자 DS부문 관계자는 “일본 수출 제재를 정부가 결정했지만 결국은 회사대 회사의 거래다. 계약에 따라 공급 받기로 한 것인 만큼 법적인 문제가 충분히 생길수 있어 그 부분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일본 정부가 수출 제재 품목으로 지정한 △감광제(포토레지스트) △고순도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중 감광제와 고순도불화수소를 일본 기업으로부터 수입해 반도체 공정에 사용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원재료를 일본 기업에서 직접 들여오거나 중간납품업체를 거쳐 구매한다. 감광제는 도쿄오카공업·신에쓰화학 등이, 불화수소는 스텔라화학·모리타화학·쇼와덴코 등이 대표적 기업으로 꼽힌다. 중간납품업체에는 국내기업뿐 아니라 일본기업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해당 원재료를 수입해 다른 화학물질과 배합 한 후 삼성전자에 납품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법적 대응에 나서는 상황이 된다면 직접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 말고도 중간납품 업체와의 협력을 통한 대응도 이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해당 품목의 공급망 체계와 공급처와의 계약 당시 계약서에 ‘법 개정이나 정부정책이 바뀔 시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형태의 계약위반 면책조항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아, 실제로 클레임을 제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원재료 납품사는 구매사와 계약 시 법개정·정책 변화 등 예상치 못한 불가피한 귀책 사유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면책 조항을 계약서에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삼성전자 측은 계약위반 등에 대한 법적대응 검토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삼성전자 측은 “민감한 부분으로 말하기 힘들다”면서도 “일반적으로 정부 정책이 변경돼 공급 불가능할 경우, 법적으로 계약 파기로 가긴 힘들지 않겠느냐”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현재 삼성전자는 이번 사태의 대응책 마련과 관련해 “상황을 파악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등 내부 입단속에 나서고 있다.
이에 한 기업법무변호사는 “계약서를 확인해봐야겠지만 일본쪽에서도 분명히 이런 부분에 대한 민감성을 인지하고 면책 조항을 넣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만약 계약서에 그런 조항이 없다면 계약 위반과 관련해 클레임을 걸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번 사안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를 해도 결과가 나오는 데 수년이 걸리는 만큼 삼성전자는 실질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는 이렇다 할 대응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감광제의 경우 수개월 치 정도의 재고만을 보관중이고, 불화수소는 5일 수준에서 물량을 공급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화수소의 경우 대체제나 국산 등을 확보해 나갈 수 있다 해도 감광제는 공급문제가 장기화될 경우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일본도 이번 사태를 오래 끌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원재료 업체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부터 반도체를 공급받는 일본 전자업계의 비용부담으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원재료 생산업체만 봐도, 최대 거래처 3사 중 2곳(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대한 공급이 줄게 되고 유효기간이 있는 원재료 재고가 부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