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 불로동 고분군 | 0 | 불로동 고분군. 아득히 보이는 도시와 고대국가의 무덤이 교차하는 풍경이 묘한 떨림을 불러일으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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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불로동 고분군을 걸어보라고 했다. 수백 기에 달하는 고대국가의 무덤 사이로 오솔길이 지나는데 역설적이게도 풍경이 어찌나 푸근한지 마음이 참 편안해진다고 했다. 볕이 고와지고 바람이 순해지니 이 길이 궁금해 대구로 향했다.
불로동은 대구 북구에 있다. ‘늙은 사람이 없다(不老)’는 의미를 가진 동네다. 후삼국시대 왕건이 팔공산 일대 전투에서 견훤에 패한 후 이곳을 지났다. 전쟁으로 어른들이 모두 죽어서인지 아이들만 보였단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다. 유서 깊은 이곳에 고대국가의 고분이 부려져 있다. 이름하여 불로동 고분군. 봄볕이 내려앉은 오래된 동네를 지나니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아름다운 곡선의 고분들이 ‘짠’ 하고 나타났다. 일반적인 무덤처럼 작은 것에서부터 높이가 10m 가까이 되는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고분들이 펼쳐졌다. 모두 214기. 흩어져 있는 면적은 약 32만㎡에 달한다. 동행한 이영숙 문화해설사는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은 고분이 모여 있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 여행/ 불로동 고분군 | 0 |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214기의 고분이 자리를 잡은 불로동 고분군. 자료나 기록이 없어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시대 토착 지배세력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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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불로동 고분군의 애기자운영 | 0 | 고분 주변에는 야생화 ‘애기자운영’이 드문드문 피었다. 이 꽃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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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무덤일까. 자료나 기록이 없어 알수 가 없단다. 이씨는 “총 세 차례 조사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2002년에 고분 91호와 93호를 발굴조사 했는데 당시 장신구와 토기류, 재갈 등의 마구류, 철촉 등의 무기류, 생선뼈 등 2000여점의 유물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5~6세기 삼국시대 이 지역 토착 지배세력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고분 사이로 이리저리 폭이 좁은 산책로가 나 있다. 듣던 대로 걷기가 편했다. 구릉에 올라선 다음부터 경사가 완만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었다. 구릉까지 오르는 것도 큰 힘이 들지 않았다. 눈 돌리는 곳마다 부드러운 곡선의 연속. 걷는 내내 마음까지 둥글둥글해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으니 시야가 탁 트였다. 외할머니집 뒷동산이 이럴까. 아득히 도시의 건물들이 보였다. 100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풍경이 묘한 떨림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고분 옆에는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렸다. 화사한 꽃이 ‘죽은 자들의 안식처’에 싱싱한 생명을 불어넣는 풍경이 근사했다. 여기는 ‘묘지’가 아닌 공원이었다. 죽은 자들이 만들어낸 정갈한 공원.
| 여행/불로동 고분군 | 0 | 불로동 고분군의 고분들은 신라의 고분이나 조선의 왕릉처럼 위압적이지 않다. 아이들이 구릉을 넘어 학교와 집을 오가고 촌부들이 고분군을 배경으로 모여 앉아 담소를 나누는 풍경이 정겹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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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불로동 고분군 | 0 | 불로동 고분군. 봉분의 곡선이 아름답다. 해가 질 무렵이면 더욱 몽환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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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신라의 고분이나 조선의 왕릉이 주는 엄숙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책가방을 들쳐 멘 아이들이 구릉을 넘어다녔다. 촌부들은 고분 옆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봄날을 즐겼다. ‘죽은 자들의 공원’에서 산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이 어울림이 멋졌다. 무덤이 주는 헛헛함은 아랑곳없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오히려 도시생활의 먹먹함을 풀어줬다.
불로동 고분군 일대는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중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풍경은 더욱 싱싱해질 거다. 고분 주변에 핀 야생화가 운치를 더했다. 보라빛이 잔뜩 오른 ‘애기자운영’을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이거 보려고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단다. 별 모양의 하얀 ‘산자고’도 예뻤다. 꽃잎에 봄이 물씬 묻어났다. 봄이 스민 작은 꽃 한 송이가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설레게 했다.
불로동 고분군 안내책자는 ‘해가 기우는 늦은 오후의 풍경이 아름답다’고 소개했다. 황혼이 부드럽게 구릉을 내리비추면 부드러운 곡선이 또렷해지고 몽환적인 분위기도 더 짙어진단다. 고분군 전체를 돌아보는 데 1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시간을 잘 조절하면 특별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
‘옥의 티’가 딱 하나 있었다. 불로동 고분군 지척에 공군비행장이 있었다. 전투기 굉음이 느닷없이 사색을 방해하는 것은 못마땅했다. 혹자는 “이 길을 걸을 때 좋아하는 음악과 이어폰을 꼭 챙기라”고 조언했다. 괜찮은 방법이다. 그는 “공군비행장 때문에 주변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지 못했고 그래서 고분군이 잘 보존된 것은 그래도 다행”이라고 했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세상살이에는 명암(明暗)이 있는 법이다.
| 여행/ 사문진나루터 | 0 | 사문진나루터의 수변데크.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가 사문진나루터를 통해 들어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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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사문진나루터의 피아노 조형물 | 0 | 사문진나루터의 피아노 조형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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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 김에 걷기 좋은 몇곳을 더 둘러봤다. 대구 달성군의 사문진나루터 일대가 괜찮았다. 낙동강을 따라 수변데크가 조성돼 있었다. 강 건너편으로 펼쳐지는 습지(달성습지)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달성습지는 낙동강, 금호강, 진천천과 대명천이 합류하는 곳에 형성된 습지다. 강의 수위에 따라 습지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볼만하단다. 한반도 모양이었다가 또 어느 순간 아메리카 대륙이나 남미 대륙의 모양으로 변한단다. 게다가 사계절 다양한 식생을 볼 수 있는데 봄이면 신록과 함께 갓꽃이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 백로나 왜가리 등의 철새는 물론 멸종위기 야생동식물 2종으로 지정된 맹꽁이도 볼 수 있단다. 습지관리사무소를 통하면 개방형습지를 탐방할 수 있다.
어쨌든 사문진나루터는 재미있는 역사가 흐른다. 이 땅에 피아노가 최초로 들어온 현장이 이곳이다. 1900년 3월 26일 대구지역 교회로 부임한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 보탐 부부는 낙동강 배편에 피아노를 실어왔다. 사문진나루터에서 내려 당시 대구 약전골목 자신들의 숙소까지 운반했다. 이게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다. 당시 피아노를 운반했던 사람들은 이것을 ‘귀신통’이라고 불렀다.
| 여행/달성습지 | 0 | 화원동산에서 바라본 달성습지. 습지의 가장자리를 탐방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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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송해공원 | 0 | 송해공원. 옥연지를 에둘러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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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송해공원 | 0 | 송해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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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문진나루터 뒤쪽의 화원동산도 봄날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신라 35대 경덕왕이 가야산에 왕래할 때 행궁을 두었던 곳이다. 숲이 울창하고 사계절 꽃을 볼 수 있어 현재는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특히 정상의 팔각정에서는 달성습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낙동강, 금호강, 진천천이 합류하는 풍경이 장쾌하다. 들머리에서 걸어서 팔각정까지 약 30분 걸린다. ‘오리전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달성군에는 방송인 송해의 이름을 딴 공원도 있었다. 바로 옥연지송해공원이다. 사연은 이랬다. 송해는 이 일대에서 군복무를 했단다. 당시 이곳 출신인 아내를 만났다. 북녘이 고향인 그는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았단다. 저수지(옥연지) 가장자리를 따라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었다.
| 여행/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 0 |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대구 근대골목투어 제4코스에 속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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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성모당 | 0 | 프랑스 루르드 성모동굴을 본떠 만든 ‘성모당’. 근대골목투어 제5코스에서 만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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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경상감영공원 | 0 | 근대골목투어 제1코스 경상감영공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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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구 걷기’를 주도한 것은 골목이다. 대구는 약 400년간 영남지방의 정신적·지리적 중심지였다. 격동의 근현대사에 얽힌 인물과 이야기가 거리마다 흘러다니는 이유다. 한국전쟁 당시 피해도 적었다. 당시의 문화유산이 오롯이 보존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대구 중구는 이것들을 잘 엮고 스토리를 입혀서 총 5개 코스의 근대골목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이게 호응을 얻었다. 특히 음악 교과서에도 등장했던 노래의 배경 청라언덕과 진골목 등을 관통하는 제2코스(근대문화골목)는 근대골목 투어를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했다. 가수 김광석을 테마로 한 그 유명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과 방천시장 등은 제4코스(삼덕봉문화길)에 속한다.
| 여행/대구 근대골목 | 0 | 대구 도심의 골목에는 곰삭은 시간의 향기가 진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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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대구 근대골목 | 0 | 대구 도심의 골목에는 오래된 건물과 이야기들이 많이 흘러다닌다. 과거로 시간여행을 즐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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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근대골목투어 | 0 | 근대골목투어 제1코스에서 만날 수 있는 옛 백록다방 건물. 화가 이중섭은 이곳에서 담배 은박지에 ‘소’를 그렸다. 현재 건물은 리모델링 한 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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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이 아니다. 대구의 흘러간 시대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제1코스(경상감영달성길)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개업한 음악감상실, ‘향촌동 귀공자’로 불렸던 구상 시인이 자주 이용했다는 여관 건물, 화가 이중섭이 담배 은박지에 ‘소’ 그림을 그렸다는 백록다방 건물도 볼 수 있다. 또 제5코스(남산 100년 향수길)에서는 유럽풍 건축물 성유스티노신학교, 프랑스 루르드 성모동굴을 본떠 만든 성모당,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의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등 이국적인 건축물과 불교, 기독교, 천주교, 유교 등 다양한 종교문화를 두루 살펴볼 수 있다. 골목마다 끝없이 이어지는 볼거리와 이야기에 젊은층이 혹했다. 요즘은 야구 경기 보러 왔다가 남는 시간을 이용해 근대골목을 돌아다니는 ‘청춘’들이 부쩍 늘었단다. 서울에서 KTX로 대구까지 2시간도 채 안 걸리니 그럴 만도 하다.
볕 좋은 봄날, 조금 특별한 곳을 걷고 싶다면 대구를 떠올린다. 봄 여행주간(27일~5월12일)에 맞춰 여행하면 기념품도 받을 수 있다. 또 생태체험 투어, 대구의 먹거리를 즐기는 프로그램과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관련 정보는 여행주간 공식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