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약왕'은 이두삼(송강호)의 10여 년간의 행적을 그린 시대극이다. 그의 성공과 몰락 과정은 부패한 1970년대 대한민국의 모습을 오롯이 보여준다. 우민호 감독이 영화 '마약왕'을 결심한 건 한 장의 보도사진이었다. 1980년 '마약왕' 이황순 저택을 무장경찰이 포위한 사진이다. 이황순은 집에 필로폰 제조 공장을 차려놓고 국내·외로 유통하다 자택에서 경찰과 대치 끝에 검거됐다. '마약왕'에서도 이 장면은 거의 그대로 재연됐다.
"당시 보도된 사진을 통해 사건을 접하고, 어떻게 유신정권 시대에 한국의 마약왕이 가능했는지 궁금했어요. 1년간 자료를 조사했어요. 필로폰은 일본 제약회사에서 2차대전 당시 카미카제(자살공격대) 특공대원들의 고통을 잊게 하려고 만든 거예요. 그리고 공장 노동자들이 군수품을 밤새 만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성제로도 사용됐죠. 중독 되면 제일 가까운 사람을 믿지 못해요. 의처증도 생겨요. 1970년대 일본 정부는 필로폰 제조를 강력하게 규제했죠. 제조하다 발각되면 사형이었다고 해요. 필로폰 수요는 넘쳤죠. 그래서 일본의 필로폰 제조자들이 부산으로 눈을 돌려 공장을 짓고 주문생산 방식으로 제조를 했죠. 백색 황금시대가 탄생한 거죠."
우 감독의 대표작은 2015년 선보인 '내부자들'이다. 이 영화는 감독판 포함 총 9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청소년관람 불가 등급 영화 중 흥행 1위의 기록이다. 같은 등급인 '마약왕'도 개봉 닷새째인 지난달 23일 누적 관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마약왕'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전기형식으로 그린다. 전반부는 1970~80년대를 풍미한 이두삼의 성공이, 후반부는 이두삼의 몰락이 그려진다. '내부자들'과 달리 관객들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는 한 남자의 파멸에 대한 이야기이자 악인을 앞세워 10년의 서사를 보여주죠. 관객들이 낯설게 느낄 수 있어요. 이야기가 상업적이지 않고 파멸 역시 혼자 파멸하는거죠. 헛된 욕망을 좇다가 성에 갇혀서 점점 파멸하는 '리어왕' 같은 거죠."
이두삼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우 감독은 송강호의 연기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단다.
"영화는 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죠. 대하드라마도 아니고 십년을 시나리오에 담기가 쉽지 않아요. 시나리오에 빈틈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이 빈틈을 채워줄 배우를 떠올리니 자연스럽게 송강호가 떠올랐어요. 당시 그는 '택시운전사'를 촬영하고 있었죠. 흔쾌히 출연하겠다고 했어요. 송강호는 상상한 것 이상의 연기를 보여줬어요. 특히 필로폰을 맞고 점점 미쳐가는 연기를 보며 소름이 돋았어요. 구체적으로 디렉션을 줄 수 있는 장면도 아니었는데. '내가 이두삼이야. 이두삼' 이라고 말한 후에 '누가 내이름 부르노' 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건 시나리오에 없는 즉흥연기였어요. 깜짝 놀랐어요."
이두삼의 성공과 파멸에는 1970년대 유신 정권 시대의 대한민국 사회상이 오롯이 담겨져 잇다.
"1970년대는 여공들이 밤새 미싱을 돌리는 시대였죠. 고단하고 힘든, 그렇지만 잘살아보겠다는 희망을 가졌던 '정직한 시대'였죠. 반면 이두삼처럼 똑같이 '잘살아보자'고 외치지만 방식이 달랐던, '괴물' 같은 인간들도 있었죠. 이 둘을 디졸브 했죠. 마약왕으로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시대와 함께 파멸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현시대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반추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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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감독은 '마약왕'의 후속작으로 이병헌 주연의 '남산의 부장들'로 관객들을 찾아올 예정이다. 그는 인터뷰 당일에도 새벽까지 촬영을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청소년관람불가가 아니예요. 중앙정보국 이야기인데, 정말 숨 막히는 드라마가 될 거예요. 기대해도 좋습니다."